갑신정변의 비자주성에 대한 견해
- 최초 등록일
- 2018.09.04
- 최종 저작일
-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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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청나라 간섭의 양상
3. 갑신정변의 발발
4. 급진개화파의 대청, 대일 인식
5. 일본군의 협력 규모
6. 결론
본문내용
1884년 일어난 갑신정변은 주도자인 김옥균이 밝혔듯이 조선을 힘 있는 근대적 국가로 만들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14개조 정강에서 국가 재정의 일원화, 입헌군주제, 정부 조직 개편 등 당시 조선에서 문제시 되었던 것들을 개선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중에서 돋보이는 것은 첫째 항에 나타난 ‘청과의 조공관계를 청산하고 대원군을 다시 데려온다.’라는 청에 대한 사대관계 폐지이다. 청나라는 임오군란 이후 민비정권을 재수립한 후에도 철군하지 않고 청군을 서울에 장기 주둔시킨 채 허구의 종주권을 주장하며 조선을 속방화하기 위해 간섭함으로써 조선의 자주독립을 크게 침해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옥균은 일본의 자금과 군대를 빌리는 방식으로 손을 잡고 청나라를 몰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결국 갑신정변은 실패하여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 양쪽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과연 갑신정변이 자주적인 개혁이었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갑신정변이 자주적인 개혁을 지향했지만, 일본의 도움을 받고 또 이 때문에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실제로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개설서와 역사책에서는 이에 대해서 일관된 의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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