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사회]예술과 사회 예상 답안
- 최초 등록일
- 2005.12.08
- 최종 저작일
-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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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술과 사회 기말고사 대비 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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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스타니체프스키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가 미술이 아니었다고 말한 근거와 나의 견해
2. 미학 : 예술의 이론. 칸트 - 비판적으로 검토
칸트의 미학이론을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견지에서 서술
이에 대한 부르디외의 관점을 설명
3. 페미니즘. 미술 창작의 특권
4. 앞으로의 미술
본문내용
스타니체프스키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가 미술이 아니었다고 말한 근거와 나의 견해
미술(예술)은 근대 이후의 산물이다. 일찌감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시와는 달리, 우리가 지금 미술이라고 부르는 영역인 회화와 조각은 과거에는 육체노동으로 인식되었으며 모두 일상생활의 맥락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이 시와 동일한 지위에 오른 18세기 중엽에야 beaux arts(예술)란 개념이 생겨나, 예술은 일상기술과 분리되었다. 이와 함께 그 이전의 산물도 공히 미술, 예술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는 미술이라 불리는 것을 근대 이후에 형성된 예술 개념-예술의 자율성, 고귀한 것, 천재 등-에 입각해서 바라본다.
스타니체프스키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가 미술이 아니었다고 말한 근거는, 아담의 창조(1508-12)가 미술이란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데에 있다. 근대적 미술 개념의 형성 이전에는, 미술은 일상생활과 분리된 독자적인 영역이 아니었다. 아담의 창조는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인 것이 아니라 시스틴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의 일부분이다. 과거에 종교-특히 로마에서의 카톨릭-는 개인의 신앙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4세기 경부터 카톨릭 교황의 권위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 벽화가 제작된 시기에는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를 볼 때, 교황청 예배당의 벽화는 카톨릭이 자신의 사회,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종교적인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로 제작을 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현대에 우리가 미술이라 부르는 것의 창작동기와는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스타니체프스키는 ‘아담의 창조’가 당시 사람들에게 주었을 이미지에 주목한다. 이 벽화가 놀랄만한 사실적 묘사와 아름다움, 웅장함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미적인 아름다움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신에게 무릎 꿇을 수 밖에 없을 정도의 경이로움, 종교적인 힘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즉, 스타니체프스키는 ‘아담의 창조’가 근대의 미술 개념 형성 이후 미술로 차용되었고, 따라서 지금은 미술이지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창작 당시에는 미술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