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제국주의와 비스마르크체제
- 최초 등록일
- 2003.01.12
- 최종 저작일
-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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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국주의와 1차대전이라는 과목의 중간고사 답안입니다. 1차대전의 기원론으로서 비스마르크체제가 주로 출제되었습니다.
각 논점에 대해 지지와 반박의 형태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과목의 시험을 앞두신 분들께는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목차
1. 1870년 이후 제국주의가 대두하는 유럽 국가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예를 들어 비교하라
2. 비스마르크체제와 관련한 아래의 문항에 대해 각각 찬반 양론의 근거를 들어 논하라.
본문내용
1. 1870년 이후 제국주의가 대두하는 유럽 국가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예를 들어 비교하라
먼저 제국주의논의와 관련된 유사점으로서 유럽 제열강의 '민족적 충동', 즉, '민족주의의 우월적·배타적 의식과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winism)의 만연화' 를 들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서구 열강은 거의 전지역에 걸친 식민지 경영을 통해 자신들의 신제국주의(New Imperialism)를 구축할 수 있었다. 또한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은 직접적으로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법 외에도 세력권(Spheres of Influence)을 통하여 간접적인 지배, 비공식적 제국주의(Informal Imperialism)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식민지 경영에 있어서 각국은 다소 차별적인 형태를 나타내었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1880년대 중반까지도 식민지 팽창에 관심이 없었다. 산업화의 진전이 늦었던 독일로선 해외 시장 개척의 필요성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게다가 무분별한 식민지쟁탈전은 오히려 국력을 소모시킬 위험을 갖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의 압력과 외교정책일환으로서의 활용(유럽세력균형)등으로 인해 뒤늦게 식민지정책에 뛰어들게 된다. 영국의 경우는 일찍부터 산업화가 진전된 탓에 원료·상품시장의 획득, 자본의 수출, 원주민의 노동력 이용 등의 경제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는 경제적 요인을 들어 제국주의를 설명한 홉슨(J.A.Hobson)의 설명과도 맞닿아 있다. 반면에 프랑스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였다. 프랑스는 대독패전으로 손상을 입은 자존심을 남방식민지 진출로 치유하여 국가위신을 앙양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경제개발보다는 교회나 프랑스어 학교설치 등 원주민을 프랑스문명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상대적으로 많이 운영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