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현진건 <무영탑>
    현진건 <무영탑> Ⅰ. 들어가며 빙허 현진건은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초창기에 해당되는 20년대 초반 ‘백조’파의 일원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 놓은 후 근 20여 년의 작가생활을 통해 뛰어난 문학적 발자취를 남겼다.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많은 사람에 의해서 다양하게 거론되어 왔지만 한결같이 리얼리즘 문학의 선구자로서 또는 그 공로자로서 그를 인정하고 있다. 대체로 현진건의 문학 세계는 크게 세 갈래로 구분된다. 첫째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등과 같이 작가 자신의 신변 체험적인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작품 군, 둘째는 <운수 좋은 날>, <불>, <사립 병원장>, <고향>등과 같은 시대 현실의 다양한 국면을 객관적 관조자의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 군, 셋째는 <적도>, <무영탑>,
  • 현진건의 무영탑
    현진건의 무영탑 1. 현진건의 생애 현진건은 1900년 대구에서 우체국장인 현경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작은 아버지 현영운이 대한제국의 군령부 총장이라는 벼슬을 한데서 알 수 있듯이 현진건은 중인계층 중 최상층인 역관 집안 출신이었다. 큰형은 러시아 사관학교 출신으로 러시아 대사관 통역으로 있었고 둘째형은 메이지대학 출신으로 변호사로 활동했다. 또 다른 형 정건은 상해 임시정부의 대한청년단 간부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형수는 남편의 옥사 소식을 듣고 그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진건은 특히 이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공부했다. 그러다가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조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
  • 현진건 [무영탑]
    <현진건 「무영탑(1938)」> -현진건 현진건은 1900년 당시 대구의 우체국장을 지내던 부친 현경운씨와 모친 이정효씨 사이의 4형제 중 셋째아들로 태어나 애국지사로 옥사한 숙형 정건씨의 영향을 받아 항일 사상을 간직하고 성장했다. 그의 집안을 일찍부터 개화하였기 때문에 외국어에 능통하여 가족들 모두 세대의 각광을 받아 개화 이후 훌륭한 직책을 가졌다. 그의 친족들은 모두 개화사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형제들도 출중하여 장형 홍건씨는 러시아 사관학교 출신으로 러시아 대사관의 통역관을 지냈고, 숙형 정건씨는 6개 국어에 능통한 재사(才士)로 상해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평양에서 옥사했다. 그의 환경과 가문은 대체로 관직을 맡았으면서도 문화 관계 직무에 종사하고 있었다. 특히
  • 현진건 <무영탑>
    현진건의 <무영탑)> Ⅰ. 서론 현진건의 <무영탑>은 동아일보에 연재된 역사소설이다. 시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자체 내 구조적 모순으로 문화적 상승과는 역행하여 정치적 하강의 길을 걷던 경순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진건은 이런 정치적 하강기에 처한 신라의 모순을 작품화함으로써 일제 강점하의 우리 민족의 식민지 질곡을 인식시키고 그를 통한 깨달음을 촉구하고자 했다. 즉 그는 식민지 정책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사회와 민족에 대한 이데올로기 의식을 바탕으로 전반적 모순을 파악해내면서 특히 사회계층의 양극화 현상과 하층계급의 불행을 주시했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심화, 확산되어 식민지 사회의 허위를 파악하는데 주력하였다. 본고에서는 이와 관련해 현진건의 생애와 작품 활동을 알아보고, 그의 사상이
  • 현진건의 <무영탑> 연구
    현진건의 <무영탑> Ⅰ. 들어가며 빙허(憑虛) 현진건은 우리나라 근대문학 초창기에 해당하는 1920년대 초 『백조』파의 일원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놓은 후 근 20여 년의 작가생활을 통해서 23편의 단편과 4편의 장편을 쓴 작가로서, 김동인과 함께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기초를 세운 선구자이며, 염상섭과 함께 한국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기초를 확립한 선구자의 일인으로 뛰어난 문학적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대체로 빙허의 문학세계는 크게 세 갈래로 구분된다. 첫째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등과 같이 작가 자신의 신변체험적인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작품군, 둘째는 「운수좋은 날」, 「불」, 「사립 정신병원장」, 「고향」과 같은 시대현실의 다양한 국면을 객관적 관조자의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
  • 무영탑 비평
    현진건의 장편 역사소설 <무영탑>은 우선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읽혀진다. 마지막 이별에 마지막 부탁, 혈마 아니 들어주실 리야 없겠지요. 이 몸이, 이 모양이 아사달님의 손으로 그 돌 위에 새겨만 진다면, 다시 살아만 있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이 하잘 것 없는 몸은 푸른 연기가 된다 해도 이 돌 위에 새겨진 내 얼굴은 몇 백 년 몇 천 년을 살아남을 것 아녜요. 우리의 비참한 사랑의 기념으로 돌 하나를 남긴다 한들 죄 될 것이 없겠지요.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아사달을 향한 주만의 비극적인 사랑’은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게 드러나는 주제였다. 그리고 아사녀의 아사달을 향한 애절한 사랑도 사랑이지만 주만은 정말 말 그대로 몸을 ‘불살라’ 아사달을 사랑한다. 독자로서 그들의 비극적 사랑에 비애를 느
  • 무영탑(독후감)
    무영탑을 읽고나서 현진건의 무영탑. 유명한 역사 소설 중 하나로 불국사의 석가탑에 얽혀 있는 석수장이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애달픈 설화를 현대 소설로 구성한 우리 국어 교과서에도 올라 있고 영화화 된 적도 있는 이래저래 유명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결말까지 끌어가는 내용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둥근 달 아래 다보탑에서의 탑돌기, 눈이 오는 추운 밤에도 돌을 다듬는 아사달, 호수에 탑의 그림자가 비치나 비치지 않나 연신 기다리며 바라보는 아사녀. 매 장면 장면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머리 속에서 그려졌다. 특히나 작품의 후반부, 주만이 불 속으로 몸을 던지고 기적적으로 구해지는 장면은 새드앤딩을 싫어하는 나에게 작가가 마지막으로 남겨둔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 글에 나오는 네 명의 주인공은
  • 현진건-무영탑
    < 20131 역사소설 서평 > 현진건의 장편역사소설 『無影塔』을 읽고 -소설 속 역사적사실과 작가의 서술의도를 중심으로- 사학과 000 目 次 1.머리말 2.현진건의 『無影塔』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 3.현진건의 『無影塔』이 말하는 1930년대 4.맺음말 1.머리말 현진건의 『無影塔』은 1938년 7월부터 1939년 2월까지 6개월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1941년 간행한 장편역사소설이다. 장편소설 『無影塔』은 전해져 내려오던 불국사 석가탑의 <無影塔 전설>을 모티브로 삼아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소설이다. <無影塔 전설>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신라 35대 景德王 때 김대성이 불국사를 건립할 당시 부여의 이름난 석공인 부석의 제자 아사달이 스승의 딸인 아사녀와 결혼한 지 일 년도 채 안되어
  • 현진건 무영탑 비평
    『무영탑』 현진건의 장편 역사소설 을 읽고 나서 우선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잘 쓰여진 한 편의 감동적인 로맨스 소설 같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이별에 마지막 부탁, 혈마 아니 들어주실 리야 없겠지요. 이 몸이, 이 모양이 아사달님의 손으로 그 돌 위에 새겨만 진다면, 다시 살아만 있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이 하잘 것 없는 몸은 푸른 연기가 된다 해도 이 돌 위에 새겨진 내 얼굴은 몇 백 년 몇 천 년을 살아남을 것 아녜요. 우리의 비참한 사랑의 기념으로 돌 하나를 남긴다 한들 죄 될 것이 없겠지요.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아사달을 향한 주만의 비극적인 사랑’은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게 드러나는 주제였다. 그리고 아사녀의 아사달을 향한 애절한 사랑도 사랑이지만 주만은 정말 말 그대로 몸을 ‘불살라’
  • [학사논문] 현진건-무영탑
    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역사소설이란 일반적으로 지난날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하여 씌어진 소설을 일컫는다. 여기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은 이미 기록된 사실(史實)을 말하는 것이고,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창조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역사소설가는 움직일 수 없는, 상상력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사실’에 충실하면서 제반 문학적 요건들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창작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평가 또한 쉽지가 않다. 역사소설 발생의 사회ㆍ역사적 조건을 볼 때, 역사소설은 정치 사회 경제적인 대변혁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유럽에 있어서 나폴레옹 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한 민족적 각성은 계몽주의 및 낭만주의적인 시대경향과 결합하여 나타났는데, 특히 독일의 경우는 자체의 경제적 정
이전10개 1 2 3 4 5 6 7 8 9 10 다음1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