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의 문학관과 임꺽정의 창작의도
- 최초 등록일
- 2009.04.07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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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홍명희의 문학관과 임꺽정의 창작의도
3. 맺음말
4. 임꺽정의 줄거리
5. 벽초 홍명희 연혁
본문내용
1. 머리말
벽초 홍명희는 1888년 충북 괴산에서 풍산 홍씨 홍범식(1871~1910)과 은진 송씨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필명 가인(假人·可人)·백옥석(白玉石)·벽초(碧初). 일본의 다이세이[大成]중학에서 수학했으며, 귀국 후 휘문고보 교사, 오산고보 교장, 연희전문 교수를 역임했다. 《시대일보(時代日報)》 사장으로 있다가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면서 부회장으로 참여했으며, 1930년 신간회 주최 제1차 민중대회사건으로 일본경찰에 피검되기도 했다. 일제하 민족운동의 지도자적 인물이던 그는 단 1편의 소설 《임꺽정(林巨正)》(1928∼1939)으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는데, 이 작품은 《조선일보》에 10여 년에 걸쳐 연재된 당대 최대의 장편 역사소설이었다. 조선 명종(明宗) 때의 도적 임꺽정의 이야기를 허구화한 이 소설은, 천민계층의 반봉건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양식을 다룬 데 그 특징이 있다.또한 봉건 귀족을 우월성의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천민계층을 이상화함으로써 계급의식과 집단의식을 현저하게 드러냈다. 그는 역사소설을 통해 계급의 관점에서 식민지적 모순보다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겨냥하는 특수한 역사의식의 시야를 노출시켰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월북했다.
이렇듯 홍명희가 살아간 세상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시대, 일본의 식민지 통치시대, 해방 후 남과 북의 이념적 대립속에서 살았다. 이렇듯 복잡한 시대적 상황에서의 문학관과《임꺽정(林巨正)》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홍명희의 문학관과 임꺽정의 창작의도
홍명희는 부유한 양반집에서 귀하게 자랐으며 장남으로써 온 집안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자라면서 차차 깨닫게 되었지만 일본유학시절 즉, 23세가 되던해 일본에 위해 치욕적인 경술국치를 당하게된다. 금산군수로 있던 부친이 이에 분개하여 자결을 하게된다. 그때부터 벽초의 ‘세상을 보는 눈’은 개인 차원이 아닌 민족의 현실문제로 열려지기 시작한다. 청년 홈명희는 아버지의 삼년상을 끝내고 부친의 의지를 받아들여 새로운 방향으로 열어나갈 길을 모색하게된다
참고 자료
강영주.「벽초 홍명의 평전」.사계절. 2004. 290p
채진홍,「홍명희의 林巨正 연구」, 새미. 1996, 43p
이태준,이원조,김남천, 벽초 홍명희선생을 둘러싼 담의『대조(大朝) 창간호』,1946.1
홍명희, 조선일보의 「林巨正傳」에 대하여, 삼천리. 1929.6월 42면,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