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 왕조의 언관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및 경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는 나라를 지키려는 뜻에서 이룩되었다. 사회의 잘못됨을 막기 위하여 마련된 이 언관제도는 잘 지켜나가면 나라의 운명을 오래 이어나가게 하는 구실을 할 수 있었다. 사회악을 없애고 질서를 바로 잡는 일은 사회의 평온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정택이었으며, 보수주의 유교방식의 정치에 없어서는 아니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시책을 위해서는 감찰 활동이 요구되었다. 감찰의 방법을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지게 된다.
첫째, 왕권을 감시하고 왕권이 유가의 가치와 규범을 지키게 하는 일
둘째, 모든 관료를 감시하는 일.
조선 왕조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감시 중에서 왕권에 대한 감시 구실이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모든 관원의 감시는 곧 왕권의 감시로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언관은 양반층의 이익을 대표하게 마련이었고, 관원을 탄핵하는 기회로 삼아 왕권을 바로잡으려고 간언을 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목차
Ⅰ. 서론
1. 들어가는 말
Ⅱ. 본론
1. 언관의 여러 기관
2. 언관제도의 역할
3. 언관제도의 폐단
4. 언관제도의 개혁론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 들어가는 말
언론이란 인간 사회 구성원들이 누구나 행하고 있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의 행위이다. 오늘날 언론은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의 대중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보의 전파, 소통행위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사실 아득한 과거부터 인간은 언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와 관계를 맺어왔다.
전통적으로 언론을 담당하는 관료조직이 존재했고 이들 언관의 활동이 곧 언론으로 표현되어 온 것이다. 언론을 소통시킨다는 고유의 임무와 이를 위한 조직 구성, 면책권의 설정 등은 여타 문명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중국 관료제도의 독특한 전통이었다. 이런 점에서 언관 조직과 이들의 활동은 인간의 보편적인 ‘언론’행위가 갖는 사회적, 정치적, 성격에 대해 국가 측에서 일찍부터 대응해 온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왕조의 언관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및 경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는 나라를 지키려는 뜻에서 이룩되었다. 사회의 잘못됨을 막기 위하여 마련된 이 언관제도는 잘 지켜나가면 나라의 운명을 오래 이어나가게 하는 구실을 할 수 있었다. 사회악을 없애고 질서를 바로 잡는 일은 사회의 평온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정택이었으며, 보수주의 유교방식의 정치에 없어서는 아니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시책을 위해서는 감찰 활동이 요구되었다. 감찰의 방법을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지게 된다.
첫째, 왕권을 감시하고 왕권이 유가의 가치와 규범을 지키게 하는 일
둘째, 모든 관료를 감시하는 일. 손보기, 「조선 전기의 왕권과 언관」, 『세종학 연구』
조선 왕조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감시 중에서 왕권에 대한 감시 구실이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모든 관원의 감시는 곧 왕권의 감시로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언관은 양반층의 이익을 대표하게 마련이었고, 관원을 탄핵하는 기회로 삼아 왕권을 바로잡으려고 간언을 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그들이 간언을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로 여긴 것은 당연하였다. 이론상으로는 국가의 운명이 군주의 잘못에 의해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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