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과 출토 유물
- 최초 등록일
- 2009.03.03
- 최종 저작일
-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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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령왕릉과 출토 유물에 관한 간략한 사진과설명입니다
좋은평가 부탁해요~^^
목차
1.무령왕
2.무령왕릉
3. 출토 유물
본문내용
1.무령왕
삼국사기와 무령왕릉 지석의 내용에 따르면 무령왕은 462년, 즉 백제 개로왕 8년에 동성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고 생전에는 사마(斯麻),혹은 융(隆)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무령왕이 14세 되던 해인 475년 백제는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개로왕이 죽고 수도 한성(漢城)이 함락당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문주왕은 지금의 공주인 웅진(熊津)으로 수도를 옮기고 재건에 나섰다. 하지만 왕권이 약화되어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등이 모두 귀족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동성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사람이 무령왕이었다. 40세(501년)의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게 된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안정시키고 백제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던 고구려의 거듭되는 침입을 물리쳤다.
또 신라, 왜(倭), 중국 남조 양(梁)나라 등과의 우호관계를 통해 동아시아 국제무대에서 백제의 위치를 확고하게 했다. 백제가 사비시대에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던 무령왕은 묘지석에 기록된 대로 계묘년(癸卯年, 523년)에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2.무령왕릉
1971년 7월 5일 공주시 금성동에 자리한 송산리고분군 안에서 역사적인 발견이 이루어졌다. 송산리 6호분의 배수로에 대한 보수공사 도중 이곳에 새로운 왕릉이 있음을 알리는 벽돌[塼]들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렇게 알려지게 된 무령왕릉은 발굴도중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내용을 적은 묘지석[誌石]이 발견되면서 다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게 된다.
지석에 새겨진 기록으로 이곳이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武寧王)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지석의 발견으로 무령왕릉은 우리나라에서 무덤에 묻힌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왕릉이 되었다.
고분의 구조는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塼築墳]의 형식을 모방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