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유산 강의 관련 풍속화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09.02.23
- 최종 저작일
- 2007.10
- 1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2007학년도 한국의 문화유산, 풍속화 조사레포트
- 관련 도록 첨부
- 관련 서적에서 설명 발췌
- 실제 학점 A+
목차
Ⅰ. 풍속화의 흐름과 의의
1. 풍속화의 보편성
2. 조선 이전 그림의 풍속적 소재
3. 조선시대 풍속화의 기원과 흐름
4. 풍속화의 절정과 쇠퇴
5. 풍속화의 의의
Ⅱ. 풍속화의 소재
1. 유교적 이념에 따른 풍속화
2. 사대부들의 아취와 풍류
3. 백성들의 생업과 휴식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풍속화의 흐름과 의의 이원복, 조선시대 풍속화, 국립광주박물관, pp.6-10
1. 풍속화의 보편성
넓은 의미의 풍속화는 일정 시개의 세정(世情)과 풍습을 나타난 그림 전체를 지칭한다. 사회 각층의 생활상을 소재로 하되 생활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의례․신앙․놀이․잔치․생업장면 등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 나라와 문화적으로 긴밀한 중국의 풍속화는 일찍이 인물화의 한 분야로서 발전해왔다. 오늘날 중국의 사회민속파로 불리는 역대 화가들은 당대의 사회상과 풍정을 관찰하여 세밀하고 힘찬 필법에 따라 묘사하였다.
장택단의 <청명상하도>중 핵심부분인 무지개다리(홍교) 부근 청명상하도(24.8x528cm)는 북송때의 인물풍속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중국 송나라 때의 대화가 장택단(張擇端 11세기 말~12세기 초)의 회화작품이다. 당시 송나라 서민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북송 수도 변경의 평화로운 시기의 번화한 모습을 그렸다. 그림 전체에는 700여명의 사람들과 100여 채의 집, 34개의 점포, 48개의 마차, 배, 가마, 84마리의 가축, 190그루의 나무, 100여자의 낙관 글자와 6개의 도장 등으로 가득 차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17세기 신흥도시로 크게 부각된 에도를 중심으로 우키요에(浮世絵)가 꽃을 피웠다. 아울러 경제적인 번영을 배경으로 각양의 생화장면이나 유녀(遊女), 광대를 소재로 한 야꾸샤에와 미인화의 두 부류로 나뉘어 발전하였고 향락적인 훈화도 목판화로 많이 제작되었다.
2. 조선 이전 그림의 풍속적 소재
조선후기(1700~1850년경) 화단에서 크게 유행한 풍속화는 동시대의 진경산수화와 더불어 크게 풍미되었던 화목으로, 당대에는 속화(俗畵)로 지칭되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풍속화는 이들 속화 외에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제작되었던 궁중 제반 행사를 담은 의궤도와 양반 관료층의 아취와 시정을 드러낸 계화도 등의 기록화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들 조선시대 풍속화의 성격을 관(官) 또는 공공적(公共的)인 성격을 띠는 것과 시정적인 내용의 것으로 양분하거나 사인풍(士人風)과 화원(畵員風), 그리고 여속(女俗)과 춘의(春意)가 두드러진 것으로 삼분하기도 한다.
참고 자료
국립광주박물관, 조선시대 풍속화, 국립광주박물관, 2002
이태호, 풍속화(하나), 대원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