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의 진실
- 최초 등록일
- 2009.02.11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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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화랑세기 필사본의 발견과 진실여부 논란
목차
Ⅰ. 화랑세기 필사본의 발견
Ⅱ. 논쟁의 시작과 전개과정
Ⅲ. 논의(論議)의 쟁점(爭點)
Ⅳ. 논쟁(論爭)에의 참여(參與)
본문내용
1989년 2월16일 부산에서 ‘화랑세기’ 필사본(축소본)이 공개되었다. 32쪽짜리 이 필사본이 만약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언급된 김대문의 ‘화랑세기’가 맞다면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삼국사기’보다 무려 460여년이나 이른 기록이다. 더욱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三國遺事)’가 고려인이 쓴 삼국시대 이야기라면 ‘화랑세기’는 신라인이 쓴 신라 이야기였으니 한국 고대사학계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이후 1995년에 원소장자의 장서 속에서 또 하나의 필사본 <화랑세기>가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두 종류의 필사본을 대조해 본 결과,1995년에 확인, 공개된 <화랑세기>는 이른바 모본(母本)이고 1989년의 그것은 이를 요약한 발췌본(拔萃本)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필사본은 남당 박창화(1889~1962)가 1933년 일본 궁내성 도서료 촉탁직으로 일할 때 필사(筆寫)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료는 비록 필사본이지만 내용 면에서 ‘국보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Ⅱ. 논쟁의 시작과 전개과정
박창화는(1889~1962) 일본 궁내성 도서료(현 서릉부)에서 한국 관련문헌자료 담당 촉탁사서로 있을 당시 필사했다는 「화랑세기」는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 원본을 베낀 것일까, 아니면 박창화가 다른 책들을 참고로 해 창작한 것일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