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문화유적을 답사하고 소감을 적은 글
- 최초 등록일
- 2009.02.05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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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에 있는 문화 유적(석촌동 백제 고분군, 종묘)를 탐방하고 소감을 적은 글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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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먼저 발걸음이 향한 곳은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백제 고분군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계단식으로 된 돌무지무덤이 눈에 띄었는데, 3단으로 되어있었고 총 높이는 5m정도 되는 듯하였으며 남북 길이와 동서길이는 매우 길어 웅장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는 백제가 한강 하류역에 위치한 한성(漢城)에 도성을 정한 후 서기 475년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형성된 백제 전기 고분군으로 백제의 매장 풍습과 함께 축조 당시 문화, 정치, 사회 등에 관한 백제사의 여러 가지 내용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데, 이러한 무덤의 양식은 고구려 초기의 무덤양식과 매우 흡사하여, 백제 건국의 주도 세력이 고구려와 같은 계통이라는 건국 이야기의 내용을 뒷받침 한다.
설명에 따르면 1917년 당시만 해도 60기 이상의 적석총이 남아 지역에 돌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이 지역을 돌마리 라고 부르게 되었고 나중에 지역이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석촌동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명 또한 고분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먼저 아름다운 우리의 이름이 한자이름으로 바뀌어 불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같은 예로 한밭을 대전으로, 벌말을 평촌으로, 빛고을을 광주로 고쳐서 부르는 것 등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한글 지명을 굳이 한자로 고쳐 부름에 따라 조상들로부터 이어져온 지명이 이어지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또 한 가지는 1917년이라면 그 때부터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당시에 60기나 되었던 고분이 난개발로 심하게 훼손되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불과 몇 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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