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은 상관관계가 있다.
- 최초 등록일
- 2009.01.11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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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은 상관관계가 있다/없다라는 주제에 관한 토론 후 과연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은 상관관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생각하여 작성한 것으로 짧지만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자료입니다. 왜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은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근거, 주장이 주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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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은 상관관계가 있다.
백년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전쟁으로 두 나라 모두에 영향을 주었는데,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백년전쟁을 거치면서 대귀족들이 제거되지 못했기 때문에 귀족전쟁인 장미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은 여러 이유에서 상관관계가 있다.
백년전쟁이 일어난 당시 예전처럼 교황은 중재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다. 교황권은 서임권투쟁과 서방대분열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했고, 교황이 2~3명으로 늘어나면서 국가별로 교황을 지지하는 국가가 달리하게 되어 두 명의 교황은 자신이 지지한 국가를 지지했을 뿐이었다.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시기 영국은 경제적으로 중세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였다. 백년전쟁 이후 경지관리의 소홀로 경제적 파탄에 이른 영주들이 소농지를 분할, 임대하면서 분할된 토지를 경영하는 자유민적인 소작인이 등장하게 되었고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노동인구가 감소하면서 소작인들에게 영주들이 더 의존하게 되어 소작인들의 지위가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이와 다르게 일부 종친 귀족이나 대영주 계급의 사람들은 파산한 영주들의 지방 영지들을 대량으로 사들여 세력이 더욱 커지게 되었고, 백년전쟁 종결 후 영토가 축소되어 농토로 복귀하지 못한 자들은 대귀족의 사병으로 전락하여 대귀족들은 군사력도 왕과 다름없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황태자인 흑태자와 결혼한 켄트 백작집안과 존 곤트와 결혼한 랭커스터 공 집안이 있는데, 바로 이들이 장미전쟁의 주인공이다.
혈통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계속된 왕위찬탈의 원인은 리처드 2세가 후사 없이 죽음으로써 장자상속제가 깨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존 곤트의 아들 헨리가 다른 귀족을 제압하고 랭커스터 왕조를 열었고 후의 헨리 6세에 이르러 다시 요크공 리처드가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면서 장미전쟁은 시작된다. 이미 장자상속제는 깨졌기 때문에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인 귀족들이 들고 일어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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