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60년,70년대 시대상 영화작품 정리
- 최초 등록일
- 2009.01.07
- 최종 저작일
- 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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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50년,60년,70년대 시대상 작품을 통하여 사회상, 문화상을 논하였고,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1953년 7월 휴전이 이루어지자 한국영화
1960년대 한국영화
1970년대 이 시기의 한국영화
레포트를 마치면서.
본문내용
1953년 7월 휴전이 이루어지자 한국영화는 일대 중흥기를 맞았다. 영화제작사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어 사극(史劇)영화 붐을 일으켰다.
안정을 찾은 대중들에게 사극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복고의 바람이 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하에서 역사적인 영화는 금지되었던 탓에 해방 후 사극영화가 대두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극은 여성관객보다 남성의 관객의 취향을 만족시켜주었다.
이규환 감독의《춘향전》이 그 첫 작품으로 제작되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어 전창근의 《단종애사(1956)》, 윤봉춘의 《논개(1956)》, 등이 대표적이다.
1956년 한형모의 《자유부인》은 <서울신문>에 연재된 정비석의 연제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논쟁을 불러일으켜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 또한 흥행기록을 세워 멜로드라마 붐을 일으켰다.
《자유부인》은 성실하지만 학문에만 열심인 한 대학 교수의 부인이야기다. 권태로운 생활에 욕구불만까지 쌓인 부인이 친구를 따라 댄스홀에 드나들다 바람이 나지만, 끝내는 뉘우치고 남편에 돌아온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다. 엄격한 유교윤리가 지배하던 당시에 여자가, 특히 가정주부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이 작품은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멜로드라마(1957년) 전성기로 들어갔고, 관객들 역시 멜로드라마를 크게 선호했다. 영화의 오락적 기능이 제몫을 하게 되었단 의미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대중들은 더욱 영화라는 오락에 빠지게 되었다. 영화이외에는 다른 위안과 재미를 줄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관객은 3,40대 여성이 주류였다. 영화계에서는 그들을 ‘고무신족’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여성들은 대체로 고무신을 신고 다녔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영화를 보며 웃고 울고 하면서 생활의 시름을 잊곤 했다. 특히 눈물을 흘리게 하는 여성 멜로드라마가 히트했다. 50년대의 멜로드라마 텍스트들은 당연히 여성주인공이 처한 딜레마와 비극적 운명을 통해서 서사적 긴장과 위기를 발생시키는데 그 과정은 너무나 많은 유사성과 반복을 보여준다. 경제적 곤궁 때문에 그들에게 강제되는 정체성의 전환이나 사회적 지위의 하락이라든지, 집이라는 물신화된 장소나 가문이라는 유교적 명예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고투와 희생이라든지, 성적인 일탈이나 타락으로 인해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도덕적 비난이나 처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참고 자료
한국영화 100년/ 호현찬/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