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8.12.15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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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참고문헌 뒤져가면서 열심히했던 리포트입니다.
졸업하는 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리는 것이니 희소성의 가치는 있겠지요.
목차
1. 생애와 활동
2.『시인부락』출신
3. 유치환 시의 특징
1) 허무의 의지, 생명의 의지
2) 시적표현
3) 남성적 어조
4. 유치환의 시세계
1) 1기 『청마시초』(일제하의 국내생활)
2) 2기 『생명의 서』(북만주 체험)
3) 3기 『울릉도』(해방이후~작고 때까지)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생애와 활동
아버지 준수(焌秀)의 8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극작가 치진(致眞)은 그의 형이다. 1922년 통영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 중학[豊山中學]에 입학했다. 이때 형이 펴낸 동인지 〈토성〉에 시를 발표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한의원을 경영하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926년 귀국,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해 졸업했다. 이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학년 때 중퇴했으며, 사진관을 경영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37년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가 된 뒤 교육계에 종사했다. 1937년 문예동인지 〈생리 生理〉를 주재했고,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를 펴냈다. 1940년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 옌서우 현[煙首縣]에 가서 농장관리인으로 일하다가 8·15해방 직전에 귀국하여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6·25전쟁 때는 문총구국대 일원으로 참여했다. 해방 직후 생명에의 열애를 노래한 점에서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 불렸다. 1954년 경상남도 안의중학교 교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어 한국시인협회 초대 회장을 비롯해 경주고등학교·경주여자중학교·대구여자고등학교·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1967년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묘지는 부산광역시 서구 하단동에 있고, 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 공원, 통영 남망공원 등에 시비가 세워졌다.
2.『시인부락』출신
시부문에 있어서 1930년대 후반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해방 이후 최근까지 시단의 흐름은 어떤 점에선 바로 1930년대 후반의 시단의 영향권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보다 엄밀히 말하면 소위 순수시 경향의 현대적 경향이 바로 이 시대에서 본격화되었다는 점이다. 유달리 많은 시인들이 배출되었고 순수시 영역에 포함되는 제 시적 흐름들이 조직적인 형태로서가 아니라 동인적인 형식을 취하면서 보다 개성적인 모습으로 다양하게 산출되었다.
참고 자료
윤병노, 한국 근․현대 문학사, 명문당, 2003
김광회.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고』 지문사. 1985
양민이, 「유치환의 시연구」, 《서강교육》2003
이병문, 「유치환의 시세계 연구」, 論文集 1996
이수정. 「유치환연구」, 충남대학교. 1994
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m=all&articleID=b17a1777a
http://blog.daum.net/anrmfk/9782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