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8.12.14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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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덕수궁 감상문 입니다. 덕수궁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과 함께 있습니다.
목차
1.덕수궁이란
2.본론- 대한문 어구와 돌다리 하마비 등의 내용
3.결론-덕수궁을 다녀와서
본문내용
Ⅰ. 서론
1. 덕수궁이란?
① 덕수궁의 창건
덕수궁은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한양으로 환도하였으나 백성들에 의해 궁궐들이 모두 불태워진 바람에 머무를 궁이 없어서 겨우 정릉동에 위치하고 있는 월산대군(月山大君) 의 집에 임시 행궁을 마련하였다. 그 뒤를 이은 제 15대 왕 광해군은 창덕궁 복구공사 가 마무리될 때까지 이 곳에 머물다가 광해군 3년(1611) 10월에 창덕궁으로 옮겨갔다. 이때 이 행궁을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광해군은 그 해 12월에 다시 경운궁으로 옮 겨 7년(1615) 4월에 창덕궁으로 이어하기까지 이 곳에 머물렀는데 이 시기에 경운궁은 처음으로 궁다운 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보인다.
② 대한제국 시대의 덕수궁
고종 32년(1895), 명성황후가 건청궁에서 일본인들에 의해서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 어 나자 고종은 1896년, 경복궁에서 아관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한다. 이 때, 태후와 태자비를 경운궁으로 옮겨 살게 하였고 경복궁에서 시해된 민비의 빈전과 열성조의 초상 화(어진:御眞)도 함께 옮겨오면서 경운궁은 궁궐로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고종은 아관에 머물면서 경운궁에 전각 짓는 일을 지휘하였고, 1896년에 경운궁의 준공을 보게 되었고 이듬해 비로소 아관을 떠나 경운궁으로 이어(移御 :옮겨가 사는 일)하게 되었다. 그 후 로도 공사가 계속되어서 선원전, 함녕전, 보문각, 사성당 등이 건립되었고 이 해에 고종 은 즉조당에서 대한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광무 4년(1900)에 궁성(宮城)을 쌓는 일이 모두 끝났고 같은 해 봄에 발전 시설이 되어 궁내에 전등을 밝히게 되었다. 광무 9년 (1905)에는 경희궁으로 바로 건너 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완성되었다. 6년 2월엔 국가 예산 31만 5천원으로 법전(法殿)인 중화전 창건공사가 시작되어 10월에 완공되었다. 광 무 8년(1904)에 경운궁에 큰불이 났다. 침전인 함녕전을 수리하다가 실화한 것이 강풍을 타고 옮겨 붙어 중화전,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등 중심곽 건물과 그 곳에 비치되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급한대로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흠경각이 응급, 복구되 었다. 순종은 즉조당에서 즉위하고는 곧 창덕궁으로 옮겨가고서 경운궁을 덕수궁이라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