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도교·천주교문학 ~ 한문과 국문
- 최초 등록일
- 2008.12.06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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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9.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
9.10. 불교․도교․천주교문학 ~ 9.11. 한문과 국문, 기록과 표현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불교·도교·천주교문학
1. 불교한시의 맥락과 불교가사의 기능 확대
2. 도교 문학의 가능성
3. 천주교 문학의 출현
Ⅲ. 한문과 국문, 기록과 표현
1. 이해의 시각
2. 대외관계의 경험보고
3. 국내 문제의 증언 술회
4. 기행문의 다양한 모습
5. 묘비명·전·행장의 변모
6. 몽유록과 가전체의 모습
7. 여성생활과 국문사용
Ⅳ. 생각해 보기
1. 도교문학과 천주교 문학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2. ‘교술산문’에 대해
3. 기행문
4. 전(傳)의 변모에 관하여
Ⅴ. 나오며
본문내용
조동일이 한국문학 통사에서 ‘중세 규범주의의 문학을 청산하고 근대 사실주의의 문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고 할 만하다.’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 시기에 많은 변화와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양상은 곳곳에서 나타났으며 우리가 공부한 9.10단원과 9.11단원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는 이 단원에 나타난 여러 문학작품과 내용들을 살펴보고, 국문학을 공부하는 문학도로서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 혹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1. 불교한시의 맥락과 불교가사의 기능 확대
임진왜란 후, 불교승려들은 자기각성과 인식의 새로운 방향을 찾으면서 가야 할 길과 실제의 형편이 어긋나는 데서 생기는 갈등을 다룬 불교 한시를 창작했다. 태능(太能)의 경우, 주체의 자유를 획득해 객체의 구속으로부터도 벗어나는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면서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보람을 찾기도 했다. 전란을 겪고서 분발하고자 했던 세대가 물러나자 고민하고 모색하기보다는 불만스러운 조건에서라도 안주를 하고 어느 정도나마 인정을 받으려는 모습도 승려들의 한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풍조였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쓰고 신도들이 널리 부를 수 있는 우리말 노래가 필요했다. 고려말에 출현한 불교가사가 최초의 가사였는데, 유학에 입각한 교훈을 가사를 통해 널리 펴는 데 맞서서 불교가사의 중흥을 꾀해야 했다. 불교가사는 독립적인 문학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의례용이었으며, 불교가사의 성행은 민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반인들도 절에서 행하는 의례에 참가하여 가사창을 듣고, 집으로 찾아온 탁발승으로부터 무수히 들어 즐겨 부르게 되었다. 이렇듯 불교가사의 수용층은 하층민으로 가사를 듣고서 선행이나 보시에 대한 발심을 느껴 실천윤리로 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진오, 『한국불교문학의 연구』, 민족사, 1997.
<회심곡>,<백발가>, 상여계통의 노래에서 불교가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참고 자료
김흥규, 『한국문학의 이해』, 민음사, 1988.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2, 3』, 지식산업사, 2006.
조수익, 『한국한문수필선』. 민족문화추진회. 1993.
이진오, 『한국불교문학의 연구』, 민족사, 1997.
조선문학편집위원실 선정·엮음,『대학 입시에 꼭 출제되는 우리문학의 뿌리』,자유지성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