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최초의 모더니스트)
- 최초 등록일
- 2008.12.06
- 최종 저작일
- 2008.11
- 2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교양 발표 때 사용한 자료입니다.
목차
■ 정지용의 생애
■ 작품에 미친 영향
1. 가족사
1) 아버지
2) 자식들의 죽음
2. 그리움
1) 유 학
2) 여인에 대한 그리움
3. 종 교
4. 일제 강점기
■ 문학사적 의의
■ 참고 문헌
본문내용
■ 정지용의 작품에 미친 영향
1. 가족사
1) 아버지의 영향
정지용의 부친 정태국은 젊은 시절 중국과 만주를 돌아다니다가 정지용이 세 살쯤 되는 때에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한약에 대한 지식을 익혀 고향에서 한약상을 경영하여 처음에는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생활이 넉넉해지자 그 부친은 4대째 독자로 내려오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소실을 두어 그 사이에서 지용의 이복 여동생 계용과 남동생 화용을 얻었다. 지용은 이복 여동생인 계용을 무척 아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해 여름 갑자기 큰 홍수가 나서 집과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고 한다. 지용은 9세 때인 1910년 4월 6일 옥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4년제의 과정을 마치고 13세 때인 1914년 3월 졸업하였다. 아직 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3년 12세 때 송재숙과 결혼하였다. 부인도 그와 동갑인 12세였는데 12세의 나이라면 그 당시로서도 조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일찍 결혼을 하게 된 데는 그 부친의 뜻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부친은 시골의 궁색한 생활 속에서도 소실을 두어 자손을 늘리려 하였다. 그래서 아들 지용도 빨리 결혼시켜 후손을 보고자 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정지용은 이러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한창 꿈을 갖고 공부할 나이에 결혼을 시켰음은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인데도 소실을 거느리고 농사를 짓던 사람이 아닌지라 농사일에 서툴러 집안일을 등한히 한 점 등이 불만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부정적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수필 ⌜대단치 않은 이야기⌟에서 확인된다. 어린이에 대한 글을 쓰라고 하시니 갑자기 나는 소년 적 고독하고 슬프고 원통한 기억이 진저리가 나도록 싫어진다. 다시 예전 소년시절로 돌아가는 수가 있다면 나는 지금 이대로 늙어가는 것이 차라리 좋지 예전 나의 소년은 싫다. 조선에서 누가 소년시절을 행복스럽게 지났는지 몰라도 나는 소년시절 지난 일을 생각하기도 싫다. 소년 시절에 대해 이러한 혐오의 감정을 갖게 된 배경을 암시해 주는 글이 그의 첫 발표작인 소설 ⌜삼인⌟이다. 이 소설은 서울에서 유학하는 조, 이, 최, 세 사람이 옥천으로 귀향하는 과정을 간략하게 그린 단편이다. 여기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것은 조군인데 그는 집안이 가난하며 어머니가 고생을 하여 유학을 시키고 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첩을 두고 처자는 돌보지 않는 박정한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참고 자료
● 김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