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프랑스 혁명은 신화인가, 허구인가?
- 최초 등록일
- 2008.11.29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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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 받은 자료만 올리는 Kimrock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1학기에 들었던 수업에서 쓴 프랑스 혁명에 대한 레포트를 올려보겠습니다.
본 레포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대강의 설명과 그를 둘러싼 여러 가지 평가들에 대해
쓴 것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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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르페브르는 이제 혁명을 국면으로 나누어 살피면서 혁명의 진행과정과 그 성과들을 기술한다. 그는 먼저 프랑스 혁명이 1787년 삼부회 소집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국왕은 삼부회를 소집하였고, 특권계급은 왕권이 약화되면 그들의 특권의 보루가 파괴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국왕의 요구를 아예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재정문제에 있어서 국왕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안건을 삼부회에 부치게 한 것이었다. 특권계급은 삼부회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삼부회는 귀족이 수세에 몰리는 대결장으로 변모했다.
이로써 혁명의 두 번째 국면인 부르주아 혁명이 시작된다. 1789년 6월 23일, 루이 16세는 입헌체제와 자유를 받아들였고, 그 점에서 국민적 통합이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국왕은 귀족의 편을 들어 권리의 평등을 거부하였고, 이제 투쟁은 바로 그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1789년 당시만 해도 사회혁명은 논리적 극단으로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특권계급과 왕권이 외국에 호소하여 내란이 발생하였고, 이리하여 부르주아지의 일부는 민중계급과 협력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하고 망명귀족의 재산을 몰수하며 성직자의 영향력을 뿌리 뽑으려고 시도하였다. 마침내 혁명은 보통 선거제를 채택하였으며, 공화정을 선포하였고, 노예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고 교육과 부조업무를 세속화했으며 호적업무를 떠맡는 등 민주화를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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