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회 귀족제설과 관료제설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8.11.26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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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사회 귀족제설과 관료제설을 비교 정리한 레포트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는 귀족제 사회였는가?
⑴ 귀족귀족제의 개념
⑵ 귀족제설의 검토
Ⅲ. 고려는 관료제 사회였는가?
⑴ 관료관료제의 개념
⑵ 가산관료제설의 검토
Ⅳ. 맺음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려사회의 성격은 여러 시각에서 규정지어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논의되어 온 것 중의 하나는 노예제 내지는 봉건제문제와 관련한 고대 또는 중세 사회론 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사상적인 측면에서 불교적 성격이 논의되기도 하였으며, 또 이 시기에 유난히 잦았던 외세와의 항쟁에 주목하여 대외적인 성격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는 정치적․사회적 주도세력의 측면에서 고려사회의 성격을 살펴보려한다. 종래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고려시대를 귀족사회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고려의 음서제는 귀족제의 제도적 보장이며 양반공음전시법은 경제적 보장이라는 것이 주된 논점이다. 물론 과거제도를 실시하였지만 관리 채용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음서제가 더 일반성을 띄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창희는 기존의 귀족제설을 반박하며 관료제론을 주장하였다. 그의 학설은 고려왕조가 채택한 보다 일반적인 관인의 등용법이란 개인의 능력 여하를 시험하여 선발하는 과거제였으며 그에 따라 선택된 과거관료가 정치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니 고려는 관료제사회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두 가지 설은 대립적인 구도를 띄면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대립 초기에는 서로의 주장의 논거인 음서제와 과거제를 검토하는 방식이었고, 다음에는 개념(귀족, 관료)의 정리를 통하여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먼저 귀족과 관료의 개념을 이해하고, 중심이 되는 두 가지 설의 논거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Ⅱ. 고려는 귀족제 사회였는가?
⑴ 귀족․귀족제의 개념
귀족은 양민보다는 상위의 특권신분층이고 이러한 신분은 특권적 가계에 출생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다. 말하자면, 「血의 상속」에 의해서 특권적 신분을 세습하며, 이러한 세습되는 특권적 신분에 적합한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 방면의 특권적 지위까지도 향유하는 인간이 귀족의 범주 속에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속하는 인간들이 국가의 요직을 점유하고 정책결정이나 가치의 배분을 귀족제적인 테두리 안에서 운영하여 간다면 그 사회를 우리는 ‘귀족제 사회’라고 부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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