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 최초 등록일
- 2008.11.23
- 최종 저작일
- 2007.10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역사수업 중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을 읽고 쓴 감상문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의궤는 국정보고서이다. 관련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의 1795년의 화성행차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며, 이 책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원본의 양이 워낙 방대해 1/10도 담지 못했다고 한다. 기록문화의 백미 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원행정례>는 정조시대의 수원행차를 전반적으로 정리한 것인데, 정리의궤만큼 자세하지는 못하다. 모든 것을 자료로 남겼으며 모든 것이 실명제이다. 저자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정치의 투명성, 책임성에 자신이 있었던 정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정조를 위대한 군주라고 처음부터 못박으며 과연 현재의 최고통치자 중 어느 누가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는지를 묻고 있다.
정조가 즉위한 시기는 이미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였고 화폐경제도 발달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광역수도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실학 운동이 일어났고 근대를 향한 움직임들이 여러 분야에서 발견된다. 정조는 이런 시대 상황을 적절히 파악하여, 서울시전상인들에게 부여했던 난전금지권, 즉 금난전권을 혁파하는 신해통공을 시행했다. 이것은 사상, 즉 난전의 활동을 보장하는 것으로 독점에서 자유경쟁체제로 이행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정조의 이러한 통치 스타일이 마치 대기업 총수 같다(p.88)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조는 과학기술과 고급학문을 융통성 있게 수용하는 한편, 주자성리학을 정학으로 정립해서 부정적인 상업·대중 문화를 배제하여 학문의 발전에도 힘썼다. 이 같은 정조에 대한 평가 위에서 정조의 화성행차를 바라본다면 앞 뒤 맥락 속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이 가능할 것이다. 정조는 왜 화성을 건설하였는가? 화성이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고 어머니 회갑을 기념하는 화성 행차를 기획한 것은 상당히 큰 사업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