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쾌대의 삶과 활동 업적과 작품 특징
- 최초 등록일
- 2008.11.18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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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쾌대의 일생과 활동 업적
목차
이쾌대의 집안
미술의 수업기
해방 후 행적
월북
본문내용
이쾌대는 일제하인 1913년, 명현석학과 고가들이 즐비한 영남 3대 반촌의 하나인 경북칠곡군 지천면 신리 웃갓마을 39번지에서 태어났다. 당시 3만석꾼인 아버지 경주 이씨 이경옥과 어머니 윤정열 사이에 2남 4녀의 막내였다. 어마어마한 부자였던 이쾌대의 집은 아버지와 네 명의 삼촌등 모두 5형제가 함께 살아 오부자댁으로 불렸다. 부친은 창원고을의 원을 지냈고, 첫째 삼촌은 고향 지천면의 면장으로 있었다. 당시 고향인 지천면 웃갓마을 땅의 대부분을 소유했던 그의 집안은 이런 재력을 바탕으로 형과 그가 외국으로 신학문을 접하러 갈 수 있었다. 또 고향인 신동에 교회를 세우기도 했던, 일찍부터 근대적 각성을 갖춘 집안 이었다. 이쾌대의 집안이 남먼저 신사상을 수용했다는 사실은 친형인 이여성이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고 형수인 박인애가 최초의 메조소프라노 성악가라는 사실과 이여성의 중국과 일본으로 유학과 독립운동, 그 자신 역시 그림 공부를 위해 일본유학을 떠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이쾌대는 일제하인 당시로는 드물게 야구와 테니스를 즐겨했고 집안에 테니스장까지 있었다는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는 이여성이 혜성단과 의열단에 가담, 독립운동의 군자금을 조달하는 자금줄이 되기도 했고 그 역시 100호, 200호나 되는 엄청난 대작의 그림을 그리는 바탕도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