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 최초 등록일
- 2008.11.11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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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럽화가 중에 한명인 뭉크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뭉크의 생애
2.뭉크의 작품경향 및 흐름
3. 뭉크의 작품들...
본문내용
-Edavard Munch (1863-1944)-
“죽음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지옥에서 나온 그림들을 그리다”
1) 생애
노르웨이 뢰텐에서 가난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는 어린 시절부터 병과 죽음의 분위기속에서 자라 평생 이러한 음울한 주제에 집착했다. 그리하여 병, 죽음, 애수, 질투 등의 주제 그림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그렸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네살 때는 한살 위 누나조차 갑자기 죽고 말았다. 이처럼 소년시절에 돌발적으로 겪은 가족사적 불행은 뭉크로 하여금 자신이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났다 믿게 하였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타고난 재능을 보인 뭉크는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랬던 아버지의 염원에 따라 1879년 크리스티아냐(현 오슬로) 공과대학에 입학하지만 얼마 후 오슬로 미술공예학교로 전과했다. 여기에서 노르웨이 자연주의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1852~1925)를 만나 사사받으며 프랑스 인상주의의 움직임을 접했다. 1885년 파리를 여행한 뒤 고갱과 로트렉같은 후기 인상파 그림에 깊은 감명을 받고 `봄날의 칼 요한 거리`(1891)나 `저녁 때의 칼 요한 거리`(1892)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
뭉크는 이 시절 사회적 관습과 예술에 대해 보헤미안적 개방성을 가진 헨릭 입센, 크누트 함순, 스테판 말라르메 등 유명 문예 지식인들과의 교유를 통해 살아있는 인간성을 가진 인물의 창조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년의 어두운 기억 때문에 자신이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알게 된 사람이라 자주 말한 뭉크는 흔히 `절망의 화가`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인간의 원초적 모습 구현을 통해 평생 동안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는 생명의 신비성을 추구했다. 30대에 들어서는 문화 후진적인 19세기 말의 북유럽을 탈피하고자 베를린으로 건너가 독일 표현파와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1892년 독일 미술계로부터 초청받아 개최된 베를린 개인 전시회에서 대다수의 관객으로부터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는 야유를 받았지만, 소수이긴 해도 새로운 예술적 시도라는 호의적 반응도 끌어내었다. 이때부터 1908년까지 독일생활을 한 뭉크는 1920년대에 접어들어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나치스 시대에는 나치정권으로부터 초기 정치선전적 목적에서 상당한 환영을 받았지만, 뭉크가 이 정부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자 퇴폐 작가로서 크게 폄하되는 수모도 겪었다. 그 후 1922년 취라히 미술관에서 대회고전, 1927년 베를린 국립 미술관에서 회고전, 1929 스톡홀름 국립 미술관에서 대판화전을 열고 37년 스톡홀름, 암스테르담, 파리 만국 박람회의 노르웨이관 등에서 전람회를 열었으나 니찌스는 뭉크의 예술이 ‘퇴폐예술’이라고 낙인찍고 82점을 몰수 하였다. 1940년 4월 노르웨이가 독일군에 점령되자, 미술평에 평의회에 관여하도록 강한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고 1944년 에케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