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비스마르크의 대외정책
- 최초 등록일
- 2008.11.03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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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스마르크에 관한 글 입니다.
목차
Ⅰ.序 論
Ⅱ. 프랑스 고립주의 정책
Ⅲ.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한 외교정책
Ⅳ. 대영정책(식민지정책)
Ⅴ. 結 論
본문내용
독일은 1884년에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식민지를 획득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었다. 비스마르크는 이전에 독일이 식민지를 얻는 것은 어리석은 폴란드귀족이 셔츠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비단이나 털가죽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 적이 있듯이 식민주의에 반대해 왔다. 그러나 1880년대에 와서 사정이 바뀌었다. 유럽의 강대국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하게 됨으로써 식민주의가 유행을 일으키게 되었다. 모든 나라에서 열광적인 압력단체들이 생겨나서 경제적인 이유와 국가의 위대성의 표시로서 식민지를 요구하였다. 독일에서는 1882년에 실업가들의 지원을 받아 식민협회(Kolonialverein)가 창설되었고, 이 단체는 여론을 해외팽창 쪽으로 이끌어갔다. 이미 국가에서도, 자유무역으로부터 보호무역으로의 전환의 필연적 결과로써 해외무역에 광범한 간섭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비스마르크의 정책변화에 있어 한 역할을 했다. 그외에 정치적 고려들도 아마 마찬가지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식민주의는 1884년 선거에서 급진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을 물리치는 편리한 도구였다. 그리고 독일 내에서 반(反)영국적 감정을 고취시킴으로써 비스마르크는 프리드리히 황태자의 친영국적인 조언자들은 불신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늙은 황제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정책전환이 어렵게 되기를 희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정부는 토착민 추장으로부터 토지를 얻어내려는 독일상인들을 지원했다. 1884년에서 1885년 사이에 독일은 서남아프리카, 토코랜드, 카메룬, 독일령 동아프리카와 태평양상의 여러 섬을 얻었다. 비스마르크는 새로운 식민지들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독일 상인들을 고무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 그의 생애 동안에는 결코 군사기지가 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식민지 경영에 드는 모든 행정 비용은 국가가 아니라 특권회사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 자료
採求堂, 『독일근대사』, 윌리엄카저, 1998
정해본, 『독일근대사회 경제사』,지식산업사, 2000
金 正, 『근대외교사』, 好樂社, 1999
홍영주,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