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과 우리민족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08.10.26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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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족을 소개하고 우리민족과의 관계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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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민족과 중국동포의 관계방향설정
우리민족과 중국동포의 관계 방향을 설정하려면 먼저 중국동포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중국 동포 흔히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대부분 일제 시대 때 생존과 독립운동을 위해서 국경을 넘어간 우리민족의 후손들이다. 한말에 외세의 침노로 조선의 국권이 흔들리며 나라 안팎의 사정이 곤란하게 되자 새로운 생활 터전을 찾아 조국을 등지고 동북 지방과 러시아 시베리아 등으로 이주해가는 한국교포의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 이 유민의 행렬은 나라가 일제식민지 시대가 되면서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토지조사 등의 명목으로 한국인의 농토를 착취하고 강제수탈하자 생계의 터전을 잃은 농민과 유랑민이 늘어 전국에서 만주로 흘러 들어갔다. 이외에 조국의 광복과 국권회복을 다짐하며 독립투쟁을 하기 위하여 조국으로부터 망명해가는 독립운동가도 많았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한인 마을에는 독립군이 뿌리를 내리었고,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교민들의 개간생활과 조국광복을 위한 독립투쟁이 연계를 이루고 어울려 이어져 갔다.
일제에 의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만주가 더욱 개척되면서 한국인의 이주는 더더욱 활발해졌다. 한국에서 나는 쌀 약 1,500만 섬 중 1,000만 섬 이상을 일제가 수탈해 가니, 절량(絶量)에 허덕이는 한국 농민은 개간할 황무지가 있는 만주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8·15광복으로 일제가 패망하였을 때에는 본국에 생활근거가 없는 우리 민족이, 조국 귀환을 못하고 만주에 무수히 처져 남게 되었다. 이들이 조선족의 1세대이며, 거기에서 태어난 자손들이 2세대가 되었다. 중국의 동포들은 조선 반도에서 중국경내에 이주하고 있다. 19세기 중엽부터 중국동포들은 전쟁과 기아, 봉건통치자들의 폭정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여러 가지의 원으로 인해 우리나라 동북변강지대에 이주하여 정착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1952년 9월 3일 중국공산당 민족정책의 빛발아래 연변조선민족자치구가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중국공산당의 영도 하에 조선족의 숙원이 끝내 새 중국에서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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