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석탑을 통해서 본 불교의 영향
- 최초 등록일
- 2008.10.23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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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중세시기 문화유적 조사~
목차
고려시대 석탑을 통해서 본 불교의 영향
1) 월정사팔각구층석탑(月精寺八角九層石塔) : 국보 제48호
2) 익산왕궁리5층석탑(益山王宮里五層石塔) : 국보 제289호
3) 신복사지삼층석탑(神福寺址三層石塔) : 보물 제87호
4) 보천사지삼층석탑(寶泉寺址三層石塔) : 보물 제373호
5) 정암사수마노탑(淨岩寺水瑪瑙塔) : 보물 제410호
6) 경천사십층석탑(敬天寺十層石塔) : 국보 제86호
7)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 : 보물 제94호
8) 무량사오층석탑(無量寺五層石塔) : 보물 제185호
본문내용
고려에 의한 삼국통일 이후 민심수습과 국민단결을 위해 불교가 국교로 정해졌음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고려시대 국교로써의 불교는 그 역할을 다하며 어느 때보다 그 세력을 향상시켰다. 따라서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유적이나 유물 중에 불교 유적 ․ 유물이 많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 만들어진 불교의 석탑을 조사해봄으로써 그 한 단면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1) 월정사팔각구층석탑(月精寺八角九層石塔) : 국보 제48호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 안에 있는 탑으로, 그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상이 마주보며 앉아 있다. 탑은 8각의 2층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대신 옥개석의 크기를 안정감을 유도했다.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탑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명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라고도 불리는 보물 제139호 석조 보살좌상(菩薩坐像)이다. 원통형 보관(寶冠)을 쓰고 오른쪽 무릎은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은 구부려 세워 왼쪽 팔꿈치를 받치고 두 손으로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한 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