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전기의 문화와예술
- 최초 등록일
- 2008.10.07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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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전기의 문화와 예술에대하여 알아보자.
목차
1. 유교정치와 유교문화
2. 불교문화
3. 풍수지리, 도교, 민간신앙
본문내용
1. 유교정치와 유교문화
고려초기 6두품 출신 관료들이 고려건국을 도와 고려시대 초기부터 유교정치가 발전되기시작했다. 광종 때 과거제도가 실시 되었고 성종때 국자감을 설치하여 유교교육에 힘썼으며 최승로는 왕에게 시무상소를 올려 불교와 정치의 분리시킬 것 과 유교정치를 해 야 함을 상소문에 올렸다. 거란과의 전쟁이후에 11세기 초에서부터 12세기초 까지 이르는 기간 동안에 고려는 편화의 시대였다 같은기간에 유교정치와 문화는 중흥기 를 맞이하였다. 11세기 문종 집권시기에 사학12도 와 최충의 구재학당이 이시기에 세워져 유교문화 진흥과 발전을 불러왔다. 이때부터 유교철학이 불교철학의 대신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11세기말부터 12세기초 숙종과 예종의 집권기에는 고려의 유교문화가 더욱 발전 하였다. 숙종 시대에는 국자감에 서적포를 설치하여 서적을 간행하였고 평양에 기자사당을 지어 주체적의식의 함양에도 힘썻다. 예종시대에는 국자감 재정비와 7재를 두어 유교교육을 전문화 하였고 궁중에 청연각, 보문각, 천장각, 임권각 등을 두어 유교적 학문의 발전을 이뤘다. 예종의 뒤를 잊는 인종은 호학의 군주로써 이때 국자감에 6학이 정비되고, 지방에도 주요 주현에 향교를 증설하여 유교교육을 지방에도 확산시켰다. 또 유신들과 더불어 경사를 토론하는 경연을 자주시행 하였다.
이시기 고려의 유학은 유교경전에 대한 독자적 이해기준을 세우는 단계에까지 갔다. 당시 중국에 없던 “고려본상서”가 있다는 소문이 송나라에 퍼진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편 고려중기에 이르러 ‘주례’가 등장하 였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주례는 뒷날 조선왕조 건국주체세력의 개혁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인종때 유교정치를 상징하는 문화적 업적은 인종23년(1145)에 편찬된 <삼국사기> 이다. 이시대 유학은 신라시대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서 한당유학을 섭력하고 북송의 송학 즉 신유학도 수용되고있음을 보여준다. 송나라 사신 서긍등이 고려를 다녀간 뒤 전하는<고려도경>에서 고려의 교육과 학문수준에 놀라움을 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종대를 전후하여 유학자들은 북방민족에게 온건한 평화를 추구하는 유학파와 북진정책을 추구하는 국풍파로 나뉜다. 국풍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서경천도 운동을 벌인 묘청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유학파의 승리로 일단락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