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삼국유사의 진표전간 본문해석과 이에 관한 분석글.
미륵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법상종`의 창시자인 진표에 대한 고찰.
목차
1. 서문
2. 본문 강독
3. 진표와 미륵신앙
(1) 미륵 상생 ․ 하생신앙
(2)「삼국유사」에 나타난 미륵신앙
(3) 미륵신앙과 진표의 점찰참회법
(4) 진표 미륵신앙의 영향
(5) 근대의 미륵신앙
4. 맺음말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 문
진표(眞表)는 한국의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승려로서, 점찰경과 점찰경을 이용한 점찰법회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국내의 많은 사료들과 불교신앙에 있어서는「화엄종(華嚴宗)」을 중심으로 한 불교사상의 정착에 크게 기여했던 ‘원효(元曉)’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미륵신앙을 중심으로 한 ‘진표’는 잘 알려져있지 않으며 그 인지도가 비교적 얕은 편이다. 하지만 일연의「삼국유사(三國遺事)」중 고승들의 행적을 담은「의해(意解)」편에서「진표전간(眞表傳簡)」외에도「관동풍악발현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심지계조(心地繼祖)」의 3편에 걸쳐 진표를 비중있게 다룬 점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이는 신라 화랑도의 중심이 된「세속오계」를 지은 원광(圓光)이나 해동(海東)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義湘(相))조차 각각「원광서학(圓光西學)」과「의상전교(義湘傳敎)」라는 단편으로서 그 할애가 끝나고, 원효조차 「원효불기(元曉不羈)」와「사복불언(蛇福不言)」의 두편만으로 그 할애가 끝난점에 비교해 본다면 적어도 사료(史料)「삼국유사(三國遺事)」와「삼국사기(三國事記)」의 시대배경 당시의 진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인물이 아니었나 사료된다. 물론 자장(慈藏), 원효, 의상(義湘)등이「화엄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기본개념으로 한 상태에서의 각각의 인물소개이기 때문에 단순한 할애의 양으로서만 그 가치를 논하는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삼국유사 전반적인 불교사상이「화엄학」인 점과 인용된 경전에 있어서도「화엄경」의 인용이 가장 많은등, 저자인 일연이「화엄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미륵신앙」의 진표에 대한 기록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점에서 당시에 진표의 비중을 확인 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삼국유사(三國遺事)의 진표전간(眞表傳簡)」을 기본으로 하여 기존의 논문과 사료들, 그리고 불서(佛書)등을 통하여 비교분석하겠으며, 또한 당시의 시대배경과 그에 따른 미륵신앙에 대하여도 간단히 알아보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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