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서산지역 답사 안내 자료
- 최초 등록일
- 2008.09.22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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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내포 문화 답사를 위한 안내 설명자료. 남연군묘, 보원사지, 서산마애삼존불, 태안마애삼존불, 예산사면석불 등의 답사 자료입니다.
목차
1. 남연군묘
1) 남연군묘와 가야사
2) 남연군 묘의 지세
3) 보덕사
4) 오페르트 도굴사건
2. 보원사지
1) 보원사지(普願寺址)
2) 보원사지 당간지주
3) 석조
4) 보원사지 오층석탑
5) 법인국사 부도
6) 법인국사 부도비(법인국사 보승탑비)
7) 보원사지 출토 철불좌상
3. 서산마애삼존불
1) 서산 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
2) 태안마애삼존불
3) 예산 사면석불
본문내용
1. 남연군묘
1) 남연군묘와 가야사
남연군은 조선 후기 왕족으로 이름은 구(球)이다.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의 6대손 병원의 아들로 정조의 이복 동생인 은신군 진에게 입양되어 남연군에 봉해져 1822년(순조 22년)에 사망했다. 남연군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아버지로 그의 묘는 흥선대원군의 야망이 묻힌 명당으로 유명하다.
현재 소재지는 충남 예산군 덕산읍 상가리 산5-28번지이며, 남연군 묘는 기념물 제 80호, 묘비는 문화재자료 제 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흥선대원군은 젊은 시절 안동 김씨의 세도를 피해 자신의 야망을 숨기며 한량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 1922년 남연군이 죽고 난 어느날 흥선군의 주위에 몰려든 한량 중에 정만인이라는 지관이 있어 흥선군에게 말하길 충청도 땅에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 (二代天子之地)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만대에 영화를 누리는 자리 (萬代榮華之地)”가 있으니 둘 중 한 곳에 선친의 묘를 쓰라고 했다. 물론 흥선군은 후자를 택했다.
그런데 흥선군이 택한 이 자리는 이미 가야산의 유서 깊은 거찰 가야사의 보웅전 앞에 있는 금탑자리로 쓰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아버지 묘를 쓰기 위해 흥선군은 차례차례 일을 벌여 나갔다.
흥선군은 가야사를 폐사시키고 묘를 쓸 요량으로 먼저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가야산 아래쪽,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절골에 임시 묘자리를 정했다. 이 땅은 영조 때 판서를 지낸 윤봉구의 사패지(賜牌地)로 파평 윤씨 후손에게서 이 땅을 빌려내어서 했다. 가야산 북서쪽 약 400m 떨어진 곳에 아직도 움푹 팬 곳이 있는데 여기를 구광지(舊壙地)라고 부른다. 연천에서 가야산까지 오백리길 종실의 무덤을 옮기는 일이었으므로 상여는 한 지방을 지날 때마다 지방민들이 동원되었는데, 마지막에 운구를 한 ‘나분들(남은들 :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사람들에게 상여가 기증되었다. 이 상여는 오랫동안 이 마을의 상여로 쓰이다가 1974년 중요민속자료 3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이 마을의 이름을 따서 ‘남은들 상여’라 불리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