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왜 사회적 이슈가 되었나
- 최초 등록일
- 2008.08.19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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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대문 왜 사회적 이슈가 되었나에 대해서 조사한 리포트입니다.
참고하시고 좋은 학점 받으세요.
목차
1. 남대문 왜 사회적 이슈가 되었나?
2. 숭례문은 무엇인가?
3. 숭례문의 역사적 위기
4. 영혼과 정신은 복원 할 수 없다.
5. 숭례문의 상징성
본문내용
3.숭레문의 역사적 위기
숭례문은 이번 화재가 있기 전 까지 엄청난 수모와 파괴 위기를 잘 견디어 내었는데
일제는 돈의문 등 조선의 왕성인 궁궐과 성곽을 항일의 상징으로 보고 철저히 파괴했으나,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을 지나갔으며, 고니시 유키나가가 흥인지문을
지나갔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보존했다고 하여 존폐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숭례문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는데 일본 황태자가 방한하자
"대일본의 황태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날 수 없다"면서 숭례문과 연결된 서울 성곽을 헐어버렸다. 성곽을 헌 자리에 도로와 전차길을 내고, 숭례문 둘레에 화강암으로 일본식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4.영혼과 정신은 복원할수 없다.
숭례문이 불에 타고 난 후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숭례문을 답사했었다.
불에 탄 숭례문 앞에서 진혼굿을 올리고 명복을 비는 기도를 드렸고. 어린이들은 국화꽃을 바치고 눈물까지 흘리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장면을 티비에서 방영해주었다.
이것이 바로 국보 1호 숭례문이 가지는 상징성이다.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물로 동요, 속담, 놀이 속에서 늘 함께 해 와 가족 이상의 가치를 지녔던 것이다.
숭례문 소실이 더욱 슬픈 것은 숭례문은 복원된다고 해도 예전의 모습 속에서 보았던 민족의 영혼과 정신은 복원할 수 없는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은 사진이나 영화 같은 복제예술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