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작가 유진와 이효석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8.08.13
- 최종 저작일
- 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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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반작가 유진오 이효석
목차
유진오 동반작가
이효석 동반작가
< 참조 >
본문내용
그렇다면 유진오에게 마르크수주의란 무엇이었는가? 아마도 유진오는 공산주의 사회 모델로서의 마르크시즘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침몰하지 않고 사회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이념적 모델로서의 마르크시즘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 공동선을 추구한다면 굳이 마르크시즘이 아닌 다른 것이어도 상관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마르크시즘이었던가? 마르크시즘이 당시 시대의 흐름을 형성하던 주도적인 사상이었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유진오는 다른 글에서 우주의 근본 문제를 ‘부분과 전체의 대립’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사회적 문제로 환언하면 ‘개인주의’와 ‘단체주의’라고 말한바 있다. 그러면서 현재는 단체주의의 부활의 시대이지만 특수성(개인)에 대한 배려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현 단계에서는 이 특수성을 고조하여서는 안 되는 사회적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단체주의를 천명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유진오는 개인의 의미를 버리지 않는다는 전제 안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단체주의의 이름으로 번안하여 수용했던 것이다.
또한 그의 마르크스주의는 자본 대 노동의 관점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차라리 계몽주의자들의 그것처럼 개인의 만족과 사회 공동선 사이의 마찰을 기본 대립 구도로 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노동자나 농민의 현실 투쟁의 모습은 희미하다. ‘근대’의 핵심(주체성의 원리)은 포괄하면서도 개인주의의 한계는 비껴가고자 했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근대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사상적 대안이었다. 그러나 유진오는 사상체계 속에서의 그것은 현 사회를 대신하는 사회 모델이 아니라, 개인주의의 문제를 보완해 주는 시대적 장치일 뿐이다. 이를테면 유진오는 근대를 체험해 보지 못한 식민지 반봉건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근대와 근대 극복의 두 길을 동시에 걸으려고 노력했었다. 근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각각 개념적 표상으로 인식한 상태에서 그 둘의 핵심을 모두 감싸 안으려는 노력이 이러한 현상형태로 표출되었다.
참고 자료
유진오소설의 동반자적 특성 연구
http://www.leejungjae.pe.kr/reboard/content.php3?id=6
http://www.kcaf.or.kr/zine/artspaper96_06/19960612.htm
유진오.이효석 - 동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