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960년대의 일본영화의 성과 쇠-황금기
- 최초 등록일
- 2008.07.31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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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50~1960년대의 일본영화의 성과 쇠에 대한 글
목차
50년대 메이저 시스템의 구축
일본영화와 서양영화의 차이
미조구치를 계기로한 일본 영화의 흥-황금기
TV에 의한 일본 영화의 망
-산업적 쇠퇴기
-예술적 격변기
인디펜던트 영화시대의 도래
독립영화의 형식과 내용의 변혁
청춘영화의 등장
일본 예술극장 협회
상업적 영화장르에 누력
본문내용
제 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세례를 받은 일본은 황폐화된 국토에 국가 전반에 걸친 변화를 겪는다. 그중 19세기 말 근대화의 일환으로 서구문물과 함께 받아들여지고, 일본 고유의 문화에 맞게 정착했던 영화 산업에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일찍 영화를 받아들인 일본은 그에 맞게 긴 메이저 시스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1950년대에 들어와서는 6대 메이저 영화사가 자리 잡음으로써 메이저 시스템을 구축시킨다. 제 2 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변화된 영화 시스템은 일본영화를 영화의 고향인 서양에 알리면서 그 기반을 더 확고히 다진다. 그러면서 일본영화는 실로 가공할만한 전성기를 맞는다. 그렇게 상업적으로, 영화 미학적으로 오르막길을 걷던 일본영화는 1950년대 후반에 정상에 오르고, 60년대에 이르러서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지금부터 50~60년대에 걸친 일본영화의 성과 쇠에 대해서 산업과 미학적인 측면에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우선 일본영화가 50년대에 국내외적으로 빛을 발하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하자면, 1899년도에 처음으로 서양으로부터 영화를 근대화의 일환으로 받아들인 데서 시작한다. 일본에 들어온 영화는 오락매체가 전무했던 그 시절 일본에서 서서히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그렇게 문호가 개방되고 수입되기 시작한 외국영화는 한 가지 장애를 겪게 되는데, 그것은 자막을 통한 해설과 대사의 전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시 소리를 갖지 못했던 영화는 자국에서는 자막을 통해 상황이 설명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외국으로 수출된 후에는 자막이 더 이상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를 직접 스크린 옆에서 해설해 주는 변사라는 독특한 직업이 생겨난다.
참고 자료
세계영화사, 영화 이해의 길잡이, 미디어 문학의 이해, 일본영화, 일본정치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