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공투의 문화와 히피문화의 차이에 미친 사회와 문화의 영향
- 최초 등록일
- 2008.07.29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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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관련 수업에서 쓴 보고서로서
일본 전공투의 문화와 히피문화의 차이에 미친 사회와 문화의 영향의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교수님께 좋은 점수 받은 보고서입니다.
많은 도움 되기 바랍니다.
목차
전공투(全共鬪) 세대(世代)의 등장.
전공투 세대와 히피(hippie)족과의 차이
차이의 근원
차이의 의미
본문내용
전공투(全共鬪) 세대(世代)의 등장.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70년 오사카 세계 박람회와 같은 사건들은 전후(戰後)를 살았던 일본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다. 전후의 식량난(食糧難)을 극복하고 국가를 재건해 낸 세대에게 70년의 오사카(大阪) 박람회는 1900년 파리 박람회만큼이나 의미가 컸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청년기를 맞은 세대는 기존의 전쟁 경험 세대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새로운 청년 문화라는 것이 세계적인 대세 이기도 했지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민주정(民主政)만을 경험한 세대에게 세계는 혹은 현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전 세대보다 풍요를 경험한 그들은 먹고 사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식인으로서의 의무 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들의 뒤를 이은 신 인류(新 人類) 세대와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이전(以前) 세대보다 부유하다는 공통점을 가졌음에도 전혀 다른 문화의 산물인 그들의 자식 세대와의 차이 역시 시대적(時代的), 문화적(文化的) 차이에 기인(起因)한 것으로 보인다.
전공투는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의 줄임 말이다. 전공투 세대란 이때의 주축(主軸)이 되었던 세대로서 베이비 붐 세대 혹은 단카이(團塊) 세대라고도 한다. 2차 대전 후의 베이비 붐은 세계적 추세였으나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만을 단카이 세대라고 부른다. 이 단카이 세대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카이야 다이이치 (堺屋 太一) 본인은 이 단카이 세대가 아니지만 최초로 문화적 측면에서 이 세대를 규정해 냈다. 이들은 전후의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나 전후 폐허(廢墟)가 된 일본과 부흥(復興)의 일본을 경험하며 자라나 1960년대, 1970년대의 학생운동의 주축이 되었으나 이후 일본 경제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갔으며 현재 일본 정치의 중심에 서있는 세대이다. 또한 현재 일본에서는 은퇴를 앞둔 이들을 겨냥한 각종 상품이 개발될 만큼 그 크기와 영향력이 크다. 이들은 일본 역사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격렬한 학생 운동을 벌였지만 그 이후의 행동은 달랐다. 소수의 주도(主導) 세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취업 후 그들이 반대했던 기업(企業)의 일원으로서 회사(會社)를 위해 충성을 다해 80년대 일본의 번영을 이뤄낸 것이다.
참고 자료
네이버 백과사전-두산 세계 대 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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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sun.com/international/news/200509/200509110288.html
1995, 사카이야 다이이치, 꿈을 뛰어넘은 사나이 히데요시 (秀吉,夢お超えた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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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논평자, 일자 미상, 요미우리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