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는 고매한 풍류랑이다.
- 최초 등록일
- 2008.07.25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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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부사시사 등 윤선도에 대한 에세이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번 에세이를 작성하면서 솔직히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단정 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극히 그러한 삶만을 산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일생에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도 있을 수 있고 또한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 것들이 100% 신빙성을 안겨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내가 믿을 수 있을 만한 사실에 근거해서 나는 윤선도란 인물에 대해 어떠한 정의를 해 보기로 결심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물론 사건의 진위여부는 어느 정도 믿을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승자의 기록이란 역사기술의 관점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예로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관계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고 갈 수 있다. <숙종실록>에서는 장희빈이 그리 표독한 악녀로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마침내 환국시대에 승리한 서인의 정권이 인현왕후를 선녀로 장희빈을 표독한 악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결국은 두 여인 모두 그 시대의 똑같은 희생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하여 윤선도에 대한 정의를 하려했으니 중립성과 편파성의 문제에 치닫게 되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내가 표면으로 끌어내린 정의는 `윤선도는 고매한 풍류랑`이라는 것이다.
풍류란 속되지 않고 운치가 있는 일이요, 풍류랑이란 풍류를 즐기는 멋스러운 젊은 남자를 뜻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풍류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윤선도 내면의 풍류이다.
윤선도는 어렸을 때 종가인 큰아버지 댁에 대를 이을 자손이 없어 양자로 들어가 부유한 배경에서 자랐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는 이들은 대개 제대로 된 교육만 받고 자랄 수 있다면 원만한 포용적 성격이 되기 쉽다. 예로써 윤선도는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그 외에 도교, 불교, 노장사상 등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수용하였으며, 표기체계에 있어서도 국문, 한문을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시상을 전개해나갔다는 것들을 들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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