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친일청산, 친일파]반민특위와 친일파청산 및 친일청산
- 최초 등록일
- 2008.07.08
- 최종 저작일
- 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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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난 학기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로 작성하여 A+을 받은 보고서입니다.
목차
1. 친일청산의 민족적 당위성
2. 친일파의 형성배경 및 정의
3. 친일파들의 활동
4. 친일파의 친일논리
5. 반민특위의 구성 및 형성배경
6. 반민특위의 내용
7.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의 발족
8. 이승만과 반민법
9. 국회에서의 실수와 친일세력의 방해 공작
10. 반민특위에 대한 암살음모 사건
11. 반민특위의 와해
12. 반민특위의 한국현대사적 의의
13. 결론
14. 참고자료
본문내용
"오늘날 누구누구를 친일파로 가려내 기소하고 처벌할 법적 도덕적 근거가 없으며 이는 역사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소설가 복거일, 계간 철학과 현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57년이 지났지만, 뒤늦게 시작된 `친일파 청산` 작업은 `친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느끼는 일부 수구 논객들의 반론들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지난 국회에서 여야를 망라한 소장파 국회의원들의 친일파 명단 발표에 전 언론사주들이 포함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들의 주장에 적잖은 지면을 할애해 반론 확산에 주력했다. 해방 후‘친일파 청산’은 통일민족국가 수립과 함께 민족적 과업이자 역사적 당위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유제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해방직후 친일파 척결이 실패한 원인으로는‘미군정 3년’이 큰 요인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수립 후 반민특위에서는 민족정기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친일파 단죄에 나섰으나 이 역시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의 방해책동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후로 이 문제는 역대 친일정권 하에서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로 취급되지 부각되지 못하고 결국 역사연구의 한 영역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친일파 연구는 한동안 학계에서 방치돼 왔다. 오직 임종국만이 재야에서 그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그러다가 80년대 이후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면서 친일파연구는 학계에서 공개적, 집단적 연구테마로 부각된 후 지속적으로 성과를 도출해 왔다. 그러나 이 분야 연구는 독립운동사나 일제침략사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과제가 많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관련자료의 수집과 전문연구자 양성, 기본자료집 보급 등이 급선무라고 생각된다.
그럼 친일파의 정의와 그 형성배경 및 활동을 알아본 후 해방 이후 반민법과 반민특위, 당시 상황 및 반민특위가 해산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고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잠시 되짚어 보기로 하겠다.
참고 자료
반민족 문제 연구소, 친일파 99인, 돌베게
강만길 외, 반민특위 활동과 와해, 한길사
길진현, 역사에 다시 묻는다: 반민특위와 친일파, 삼민사
이헌종, 해방 이후 친일파 처리문제에 관한 연구, 학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