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복의 동사강목
- 최초 등록일
- 2008.07.06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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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의 역사가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대해 다룬 레포트입니다.
목차
1.序論
-안정복의 생애와 저술
2.本論
-학문관과 역사관
-편찬과정
-체재
-사론
3.結論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서로서 『동국통감』과 함께 언급되는 것이 『동사강목』이다. 『동사강목』은 조선후기 역사연구의 귀결점이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후대에 끼친 영향까지를 고려할 때 더욱 그 가치가 돋보인다. 안정복과 그의 대표적 저술인 『동사강목』은 일찍부터 학계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그 인식은 대체로 실학의 근대성이라는 개념틀에 의해 포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 들어 실학의 개념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면서, 안정복과 그의 역사인식을 당대의 사회상 속에서 학문관, 사회사상, 당파 등의 요소를 이해하려는 연구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생애와 저술
안정복의 자는 백순이며 호는 순암이다. 그는 숙종조 말에 태어나 정조 중반기를 살다 간 인물로서, 학문적, 사상적으로는 근기 남인의 맥을 잇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향촌의 사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집안은 조선후기에 이르면서 현달한 인물을 내지 못하였다. 그의 조부 안서우가 울산부사에 오른 것이 비교적 현달한 정도였다. 그러나 영조 즉위 후 안서우가 노론의 배척을 받아 파직되어 일가가 전라도 무주에 은둔하게 되면서, 그는 일찍부터 과거를 통한 입신에 뜻을 두지 않았다. 무주에 칩거하던 그는 조부가 죽자 부친인 안극을 따라 25세 때에 고향인 광주 덕곡리로 옮겨왔다. 안극이 이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지손으로서 종통을 이어야 하는 가문 내의 사정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학문적으로 정통론을 중시하게 된 개인적인 배경을 이루었다. 그는 학문의 방향을 성리학 중심으로 바꾼 후 35세 때에 비로소 안산에 살고 있던 이익을 방문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당시 이익의 문하에 있던 윤동규, 이병휴 등과 교유하게 되었다. 안정복은 30대에 이익에게 사사했지만, 이미 20대 후반에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정립한 『하학지남』을 쓰는 등 자기 나름의 학문적 방법론을 정립하고 있던 상태였다.
참고 자료
조동걸·한영우·박찬승,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창작과 비평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