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사상 -유교
- 최초 등록일
- 2008.07.03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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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Confucius 2.0
KBS 기획 다큐 <2500년의 여행, 유교>를 보고
중국에서 부는 유교의 바람을 KBS에서는 <2500년의 여행, 유교>로, MBC에서는 <공자의 부활>로 제작◦ 방영하였습니다. 이에 저는 중국에 부는 유교의 바람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다큐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유교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공자가 냇가 위에서 이르되,
‘가는 자도 이와 같을까? 주야로 흘러서 쉬는 일이 없구나.’
보통 이를 공자의 천상((川上)의 탄(嘆)이라고 한다 . 그러나 ‘이를 공자가 시인으로서 한말인가? 철학자 또는 교육자로서 한말인가? 깊이 빠지지 시작하면 그때부터 본질의 오류가 발생한다. 공자가 그냥 제자들과 강변을 거닐다 문득 스쳐 지나 간 옛 생각에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가니, 생명과 역사와 인간만사가 이와 같이 흘러가는구나’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경험과 나이는 비례한다고 볼 때 예순의 나이라면 우리도 당연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공자를 거대하게 생각하여 너무 깊이 빠져드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2500년 동안 죽지 않은 공자의 사상, 어느 이는 이 약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
문화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1년, 마오쩌둥의 후계자로까지 불리던 린뱌오가 몽골에서 의문사했다. 홍위병들은 그의 집에서 유가의 핵심 사상인 ‘극기복례 ’와 ‘중용지도 ’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공맹의 어록을 찾아냈고, 4인방은 현실의 정적을 공격할 좋은 구실을 죽은 공자에게서 찾았다. 극기복례가 상하 신분질서를 정당화해서 노예제도로 복귀시키려 했듯, 린뱌오의 반(反)혁명 수정주의는 계급투쟁에 반대해 지주◦자산계급의 전제를 합리화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중국은 ‘비림비공(批林批孔) ’의 광풍으로 뒤 덮였다. 안 그래도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을 때려부수자”란 ‘4구(舊)타파’ 운동이 소용돌이 칠 때였다. 권력의 조종을 받아 이성을 잃은 군중들이 공자의 고향이자 공자가 죽어 묻힌 취푸에서 공자묘를 불살라버렸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9월 28일, 공자 탄신 2558주년 기념일 날 중국정부는 국가급 공자제사를 직접 주체하여 공자의 공자사당에서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각 대학에서는 ‘국학반’이 만들어지고 TV에서는 고전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각 지방의 유치원에는 공자의 말씀을 읽는 아이들의 참새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중국사회에서 공자가 새롭게 부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3년 중국의 국가주석이 된 후진타오는 통치이념으로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내세웠다. 문화혁명 이후 봉건적 전제주의의 상징으로 매도 된 유교적 가치를 이례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 종교인구 53.9% 중 불교 47%, 개신교 36.8%, 천주교 13.7%, 유교 0.7% 로 기록되어 있다 -2006,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