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당쟁
- 최초 등록일
- 2008.06.28
- 최종 저작일
- 2008.06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시대 당쟁에 대해서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당쟁의 시작(선조~광해군)
1. 동서분당
2. 붕당정치의 전개
Ⅲ. 서인의 집권과 문묘종사운동(인조~현종)
1. 인조반정과 서인의 집권
2. 대동법 실시를 둘러싼 분당
3. 문묘종사운동의 전개
Ⅳ. 예송논쟁과 환국의 시대(숙종~경종)
Ⅴ. 탕평정치(영조~정조)
Ⅵ. 나오며
본문내용
고려말 신진사대부는 조선건국을 계기로 둘로 나뉘게 되었다. 조선건국에 적극 가담했던 역성혁명파와 고려 자체는 지속시키면서 개혁을 진행하려고 하였던 온건개혁파가 그것이었다. 조선건국을 계기로 역성혁명파는 지배층으로 부각되었고, 조선 초 여러 차례 정변을 거치면서 다수의 공신을 배출하여 조선건국(1392)부터 중종반정(1506)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478명이 공신이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공신 집단에 왕실의 외척인 척신 세력 등 일부 세력이 합쳐져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였는데, 이를 훈구파라고 하였다. 이들은 권력을 바탕으로 점차 부패해져 갔다.
한편 온건개혁파는 100여년동안 향촌에서 힘을 키워 하나의 세력을 형성해갔는데 이를 사림파라고 하였다. 이들은 부패한 훈구파를 비판하였으므로 백성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훈구파는 이런 사림파에 대하여 탄압을 가했는데, 이 탄압이 사화였다. 연산군 4년(1498)의 ‘무오사화(戊午士禍)’이래 50년동안 큰 것만 해도 연산군 10년(1504)의 ‘갑자사화(甲子士禍)’, 중종 14년(1519)의 ‘기묘사화(己卯士禍)’, 명종 즉위년(1545)의 ‘을사사화(乙巳士禍)’ 등 네 번이나 있었다.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사림파는 성리학이라는 확고한 정치 이념과 공통의 스승(정몽주ㆍ길재 등)을 모시는 학통(學統)으로 연결된 조직을 바탕으로 계속 훈구파에 도전하였고, 백여년 간의 기나긴 싸움에서 승리하고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당쟁(黨爭)이란 붕당(朋黨)이 갈려 서로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붕당에서 ‘붕(朋)’은 보통의 친구나 벗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道)를 같이 하거나 같은 스승(師)밑에서 배운 학우(學友)를 말한다. 그리고 ‘당(黨)’은 ‘편당(偏黨)’, ‘파당(派黨)’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기를 따르는 사람은 받아들이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척하는 것을 말한다. 즉 ‘붕’은 좋은 의미이지만, 붕당은 결코 좋은 뜻일 수 없다.
참고 자료
이덕일,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석필, 1997
이건창 저, 이덕일 역, 『당의통략』, 자유문고, 1999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1, 2, 아름다운 날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