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에 나타난 스크립토리움과 역사 속 실제 스크립토리움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8.06.23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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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미의 이름`에 나타난 스크립토리움(필사실,필경실)과 역사 속 실제 스크립토리움 비교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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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옴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한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한 치밀한 구성뿐만 아니라 중세의 수도원의 모습을 아주 잘 묘사한 작품이다.
소설의 묘사되어있는 내용과 실제 역사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소설의 배경인 14세기의 수도사들과 수도원을 이해하기위해서는 8~9세기 카롤링거 르네상스라 불리는 시대부터의 수도원을 둘러싼 여러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로마 제국 붕괴 이후 비잔틴 제국에서는 장서가 풍부한 도서관들이 번창했고, 서양의 채식장식에 영향을 준 세밀화 기법이 발전되었다. 한편 라틴 문명은 유럽에서 영적 삶의 근원지요, 경제적 생산 활동의 중심지이며 동시에 문명의 관리자였던 수도원으로 숨어들었다. 6~8세기까지 아일랜드와 영국의 선교활동으로 특히 주목을 끌었던 수도원들은 대규모 건립운동을 벌여 유럽전역으로 세력을 확산해 나갔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브누아 성인이 정한 율법을 전파했는데, 그는 529년에 몽 카생수도원을 창설하였다. 몽 카생수도원의 수도자들은 그들의 하루 일과를 기도와 육체노동, 영적인 작품을 읽는 일에 배분해서 활용해야 했다.
이 아니안의 성 브누아(베네딕투스)의 영향 하에 817년 경건왕 루트비히 1세가 일으킨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대개혁으로 베네딕투스 수도주의의 본래적 특성인 내적 성찰이 한층 강화되었고, 스크립토리움 설립 움직임이 강화되었다.
수도원의 스크립토리움에서 공들여 사본들을 베끼는 수도사들도 그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쓰는 데 바쳐진 시간과 수고와 노력이다. 그것은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참회의 행위인 것이다. 이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학문이란 조심스레 지켜야 하는 보물이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브뤼노 블라셀 저, 권명희 옮김, 『책의 역사 - 문자에서 텍스트로』, 시공사, 1999
자크 르 고프 저, 최애리 옮김, 『중세의 지식인들』,동문선,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