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06.15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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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해군에 관한 일생과 업적에 관하여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광해군의 출생과 업적, 죽음까지 전반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평가를 작성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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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광해군.
조선왕조 제15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608년에서 1623년까지이다. 이름은 이혼(李琿), 본관은 전주, 선조(宣祖)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공빈 김씨(恭嬪金氏)이며 비(妃)는 판윤 유자신(柳自新)의 딸이다.
광해군에게는 형 임해군이 있었으나 언행이 난폭하고 무도하여 임진왜란으로 평양으로 피신을 간 선조가 피난지에서 세자에 책봉하였다. 선조와 함께 의주로 피난을 가는 길에 만약을 대비해 국사권섭의 권한을 위임받았다.
임진왜란 기간 중에 평안도·강원도·황해도 등지를 돌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왜군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를 모집하는 등 적극적인 분조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을 수복한 후 무군사(撫軍司)의 업무를 담당하여 수도 방위에도 힘을 기울였다. 1597년 정유재란(임진왜란 중 왜군의 2차 침략을 따로 부르는 말)이 일어났을 때는 전라·경상도로 내려가 군사들을 독려하고 군량과 병기 조달은 물론 백성들의 안위를 돌보는 등 임진왜란 기간 동안 국가 안위를 위해 노력하였다.
1608년 선조가 죽자 왕위에 오르고 이듬해 왕으로 책봉되었다.
광해군이 왕이 되는 길은 순탄하지 못했다. 1606년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 김 씨에게서 영창대군이 태어났다. 그러자 영창대군은 적자이고 광해군은 서자이며 둘째아들이기 때문에 영창대군으로 하여금 후사를 삼아야 한다는 소북파와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 간에 암투가 심했다.
1608년 병세가 위독한 선조가 광해군에게 왕위를 잇도록 하는 교서를 내렸으나, 소북파의 유영경이 감추고 있다가 대북파의 정인홍 등에 의해 사실이 알려져 광해군 즉위 후 유영경은 사사되었다.
당쟁의 폐해를 실감한 광해군은 즉위 후 당파를 초월하여 정국을 운영하려 했지만 대북파의 힘에 못 이겨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광해군 3년(1611) 이언적·이황의 문묘종사를 반대한 정인홍이 성균관 유생들에 의하여 청금록에서 삭제 당하자 유생들을 모조리 퇴관시켰다. 이듬해에는 김직재의 무옥으로 1백 여인의 소북파를 처단하였다.
참고 자료
네이버, 직접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