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통과 로베스피에르, 「당통의 죽음」분석
- 최초 등록일
- 2008.05.30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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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생애와
책 <당통의 죽음>분석한 것입니다.^^
목차
<당통에 대해서>
Ⅰ. “최초의 테러리스트” 당통의 생애
Ⅱ. 관련된 작품-혁명의 고독: G.Buchner: <당통의 죽음>
1. 혁명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고독
2. 본문 텍스트 분석
2.1. 혁명의 도그마, 로베스피에르 정체(政體)의 그림자
2.2. 당통의 고독과 생에 대한 허무 의식
3. 사회의 진정한 혁명을 위하여
<로베스피에르>
Ⅰ. 로베스피에르의 생애
Ⅱ. “공포정치로 프랑스를 떨게 하다”- 로베스피에르
본문내용
<당통에 대해서>
Ⅰ. “최초의 테러리스트” 당통의 생애
오브 데파르트망(Department) 아르시스쉬르오브 출생. 랭스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1785년 파리에서 고등법원 서기를 거쳐 1787년 왕실고문회(Conseil du roi) 소속의 변호사가 되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J.P.마라, J.R.에베르 등과 함께 코르들리에 클럽을 결성하고 파리의 자코뱅 클럽에도 가입하여 혁명운동을 주도하였다.
1791년 12월 파리코뮌의 검찰관(procureur) 차석 보좌관으로 봉직하였고, 1792년 8월 10일의 봉기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나 혁명의 코뮌과 의회 사이의 조정역할을 인정받아 법무장관에 취임하였다. 독일군에 의한 위협을 강조하고 파리의 방위태세를 굳혔으며, 동시에 반혁명 용의자를 학살한 9월 2일 사건을 묵인하여 지롱드당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대단한 웅변가이면서도 낭비벽이 심하여 항상 독직소문이 무성하였다.
국민공회(國民公會)에서는 산악당(山岳黨)에 속하였고, 자코뱅당(黨)의 우익을 형성하여 좌파인 에베르 일파와 대립하였다. 혁명적 독재와 공포정치의 완화를 요구하고 경제통제에도 반대함으로써, 결국 1794년 4월 로베스피에르에 의하여 숙청되어 처형되었다.
Ⅱ. 관련된 작품-혁명의 고독: G.Buchner: <당통의 죽음>
1. 혁명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고독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2) 참여시로 유명했던 김수영 시인은 일찍이 혁명의 고독에 대해서 말했다. 식민지 근대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 구조를 성숙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번의 혁명과 쿠데타, 민중 항쟁을 거치면서 숱한 피를 뿌린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와중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거나 독재 권력에 의해 억압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의 변혁이라는 당면한 요구 앞에서 ‘인간’ 자체는 너무도 쉽게 망각되었고, 혁명의 세기가 지나간 오늘날에 와서도 우리는 아직까지 인권에 대한 존중을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