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강점기 조선의 변절 친일파 연구 : 민족주의자들의 친일 변절과정과 요인
- 최초 등록일
- 2008.05.30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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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점기 조선의 변절 친일파에 대한 연구입니다.
참고하시어 좋은 글 쓰시길 바랍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Ⅰ. 서론 : 친일파 문제
1. 연구의 목적 : 친일파 중 변절친일파의 변절 원인과 과정 파악
2. 연구의 방법 : 기존의 전문자료 분석
3. 연구의 한계 : 변절친일파의 행동에 옹호하는 성격을 가질 수 있음
Ⅱ. 변절 친일파의 종류와 변절 원인
1. 일제의 문화통치정책에 의한 변절 친일파
2. 독립운동 중 일제의 압력에 의한 변절 친일파
3. 일제의 보편적 전향운동에 의한 변절 친일파
4. 민족주의자들의 변절 원인
Ⅲ. 변절 친일파의 모습
1. 최린
2. 최남선
3. 장춘수
4. 박희도
5. 김활란
6. 그 밖의 변절 친일파들
Ⅳ. 친일파의 후손들과 그 한계
1. 광복 후 친일파들의 행로와 그들의 후손들
2. 친일파 연구의 한계
Ⅴ.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강점기 조선 속의 우리 민족 모습은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첫째,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운동가와 민족주의자들
둘째, 자신의 안위와 부를 챙기기 위한 친일파들
셋째, 선동자들에게 휘말려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민중들
우리는 여기서 두 번째 친일파들 중에서 변절 친일파의 내용을 다뤄 보려고 한다.
1. 연구의 목적은 변절친일파들의 변절 원인과 과정을 파악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들 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목적을 둔다.
중략..
Ⅲ. 변절 친일파의 모습과 행태
1. 최린 - 민족 반역행위를 한 천도교의 핵심인사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 받았다. 당국의 배려로 1921년 12월 22일에 가출옥했다. 총독 사이토를 비롯한 당국자들은 최린을 ‘문화정치’에 이용하고자 가출옥 시킨 것이다. 무크·친일문제연구②, 이광식, 가람기획 1995. p.299
출옥 후 천도교 교세확장에 힘쓰다가 친일파로 변절하여 중추원 참의, 총독부 기관지 매일 초대 사장, 임전 보국단 단장 등을 지냈다. 해방 후 반민법정에 선 ‘친일파’ 최린은 “기미년 당시 일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유혹하여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라고 친일행위에 대한 변명을 하였다. 반민특위 검찰부는 “최린은 함흥 태생으로 일본 명치대 법과를 졸업한 자로 33인 중의 1인으로서 1934년부터 5년간에 걸쳐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1934년부터 1년간 총독의 정책수행을 위한 기관인 시중회의 이사를 역임한 후 1937년부터 2년간 매일신보 사장을 지냈고, 1939년 임전보국단장을 역임, 동년 가을에 부민관에서 읍소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여 일본 제국에 충성을 다한 자로, 천도교 장로로 있을 시에 비행기 용담호를 헌납하였으며 1935년 3월에는 매일신보에 2천6백만은 대동아전쟁에 돌격할 것을 발표하여 일제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로 이에 심판을 구한다.” 라며 최린을 지적하였다. 친일파 100인 100문, 김삼웅, 돌베개 1995. p.38~39.
참고 자료
- 친일파 100인 100문, 김삼웅 편저, 돌베개
- 일제침략과 친일파, 박종국, 청사
- 친일, 그 과거와 현재, 임종국, 아세아문학사
-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 장두환, 역사비평사
- 친일정치 100년사, 김삼웅, 동풍
- www.naver.com(네이버)
- 친일파란 무엇인가?, 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문화사
- 친일변절자 33인, 김삼웅, 가람 기획
- 독립기념관
- 청산하지 못한 역사 : 한국현대사를 움직인 친일파 60인, 반민족문제 연구소, 청년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