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정치적 공과에 대한 평가
- 최초 등록일
- 2008.05.28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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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승만의 정치적인 공로와 과실을 평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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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승만은 미국에서 거의 삶의 반을 유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는데, 나이 70세가 되서, 한국에 귀국하여, 제헌국회의원에 무투표 당선하고 국회의원에 피선되어 대통령중심제 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직 냉전중인 한국을 위해 이승만은 국제적 승인, 국제기구 가입, 안보와 그를 위한 동맹관계 수립, 치안유지, 전재 복구와, 경제 발전, 국민통합 등의 과제에 직면하였다. 그리고 이승만은 한민당과 남로당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농민들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이고, ‘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6.25 전쟁 전에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농지의 70~80%정도를 인구의 다수를 차지했던 소작농민들에게 분배하였다. 그 동안 이 소작농민들은 토지를 매개로한 여타 세력, 특히 한국을 부인하는 좌파와 그 배후에 있는 북한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 소농이 되면서, 이승만 정부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며, 이승만의 지지기반이자, ‘한국’의 국민으로 포섭되어 갔다. 또한 이 농민들은 전쟁이 터지면서, 이승만에 의해 더욱 강화된 반공과 함께 더욱 ‘한국’에 포섭되어 가며 ‘한국인’의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 당시 애치슨 선언에서 볼수 있듯이, 미국은 한국에 상당히 무관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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