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시대에 대한 석탑양식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쓴 레폿입니다~
목차
Ⅰ.서 론
Ⅱ.본 론
1. 고려시대 석탑의 석탑의 전국적 분포 원인
2. 고려시대의 석탑의 양식에 따른 분류
1) 백제계석탑
2) 신라계석탑
3) 고려계석탑
4) 특수형석탑
5) 가야계 석탑의 미복고(未復古)
Ⅲ.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고려시대에는 國初부터 불교를 國是로 삼은 까닭에 앞 시대에 비해 불교가 더욱 발전해 마침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왕건의 《훈요십조》에 반영된 圖讖思想은 불교의 대중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려는 개국 직후 수도인 개경을 중심으로 법왕사, 왕륜사, 자운사, 내제석사, 사나사, 천선사, 신흥사, 문수사, 원통사, 지장사 등 10대 사찰을 창건하였고, 당시 도성 내에는 70구의 佛事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왕실의 불교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경에 칠층탑, 서경에 구층탑을 세우고, 경주의 황룡구층목탑을 중수하였고, 통일전쟁에서 숨진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개태사를 세우는 등 수많은 불사를 진행한 결과 고려의 불교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처럼 거국적인 지원을 받은 불교는 더욱 융성해졌고, 자연스레 수많은 사찰이 방방곡곡에 건립되었다. 이로 인해 석탑 또한 수적인 면에서 앞 시대를 능가할 뿐만 아니라, 고려 나름대로의 특색 있는 석탑문화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은 우선 석탑 건립이 통일신라시대 말기, 즉 9세기 석탑에서 시작된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지방적인 특성이 가미된 다양한 형식의 석탑이 건립된 점과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된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신라는 삼국통일 후, 고려시대와 거의 같은 영토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신라의 석탑은 지역적으로 경주 부근에 밀집해 있다. 그 밖의 것도 대개가 구영토였던 영남지방에 편재해 있다. 물론 고구려나 백제의 故土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미한 숫자의 불과한 형편이다. 그러나 고려의 경우 그 유례는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숫적으로는 王都인 개경 부근이 우세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분포상의 변화는 시대상의 변혁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즉 왕실 불교적 입장에서 출발한 한국 불교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중화된 결과라고 하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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