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 고대사회와 국가 수업중 백제의 지배체제에 대한 발표 보고서입니다.
목차
1. 읍락사회의 구조
2. 삼국시기 초기의 지배체제
3. 읍락사회의 변화
4. 집권적 지배체제의 정비
5. 한성시대의 중앙집권력 강화와 그 운영
6. 웅진천도와 신진세력의 둥장
7. 사비천도와 지배체제의 재정비
8. 관산성 패전과 귀족중심의 정치운영
9. 관부제와 관직의 설치
10. 귀족회의제
11. 지방통치조직
12. 촌락사회의 편제
13. 맺음말
본문내용
4. 집권적 지배체제의 정비
읍락사회의 동요에 따른 지배체제의 개편 과정에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가 마련되었다. 삼국의 중앙지배층은 복속된 소국, 읍락에 여러 등급의 지방지배단위를 설정하여 영역 대의 모든 주민을 국가의 직접적인 지배대상으로 편제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여 상주시킴으로써 지방만을 직접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지방지배체제는 어디까지나 기존의 소국이나 읍락을 단위로 하였으며, 지방지배단위 사이의 상하 영속관계도 기존에 소국과 읍락이 맺고 있던 관계를 바탕으로 설정되었다. 파견되는 지방광의 수도 많지 않았으며, 지방사회에서 실제적인 행정업무도 현지의 유력자가 주로 담당하였다.
신라의 경우 지방의 유력자를 촌주로 임명하여 중앙권력이 침투하는 매개역할로 맡겼다. 지방관은 이 촌주의 협조를 받아 조세를 징수하거나 축성을 비롯한 각종 영역에 지방민을 동원하였다. 또 영역 확대를 위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지방관은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백제의 5방에는 방령이 각각 700∼1,200명의 군사를 거느렸다. 각 부의 독립성이 약화되면서 중앙의 지배체제도 재편성되었다. 각 부별로 두었던 관료조직은 국왕 아래의 일원적인 관등·관직체계에 흡수 재편되었다. 집권화가 추진됨에 따라 중앙정부의 업무가 복잡해지면서 관부가 분화되었고, 많은 관직이 새로 설치되었다. 또 늘어난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서열화하여 관등제를 정비하였다. 백제는 5세기 후반까지는 6좌평제와 16관등제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였고, 중앙정부의 업무도 22관부로 세분하여 관장하였다. 백제의 관리들은 대체로 3등급으로 나누어졌다. 1등급은 솔(率)류이고 2등급은 덕(德)류, 3등급은 무관계열 이었다. 흑치상지의 조상이 대대로 달솔에 임명되었던 예에서 보듯이, 백제의 지배층은 이러한 관등의 구분에 의해 몇 등급의 신분으로 편제되었다.
이처럼 신분제의 제약을 받는 관등제의 운영은 삼국시기 초기부터 국가권력을 독점하던 각 부의 최고 귀족집단이 일원적인 관등체제 속에서도 자신들의 특권을 항구적으로 보장하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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