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어 온 과정을 교육, 노동, 가정, 정치 분야를 통한 설명
- 최초 등록일
- 2008.05.12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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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성들은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왜곡된 채로 소홀히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성 없는 역사란 관연 가능한가? 여성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인류의 절반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 중요한 구성원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랑스혁명의 업적은 봉건제적 잔재를 청산하고 절대왕정과 귀족층을 소멸시키는 한편 영주제와 봉건적 특권신분을 타도함으로써 자유, 평등, 우애의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근대 시민사회 성립의 중요한 토대를 놓았다는데 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앙시앵레짐 하의 프랑스 여성의 권리
2. 계몽주의 시대의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
3. 「제 2의 성」과 ‘여성성’의 신화
4. 68혁명과 20세기 여성해방운동
5. 여성의 사회 진출과 여성 지위의 향상
6. 프랑스 여성의 노동과 가정의 변화
7. 남녀 동등 법안과 여성 문제의 정책화
Ⅲ. 결 론
Ⅳ. 참고자료
본문내용
Ⅱ. 본 론
1. 앙시앵레짐 하의 프랑스 여성의 권리
앙시앵레짐 아래에서 가족 제도 및 가족 문화를 지배한 것은 가부장제도다. 가부장제도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으로서, 앙시앵레짐 하의 여성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는 아버지나 남편의 부속물에 불과하다. 여성의 운명은 출생에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손에 좌지우지되었으며, 결혼 후에도 가부장적이고 경제적이며 권위적인 부부관계로 인해 내밀한 관계는 맺지 못한 채 남편에게 철저히 복종하며 살아야 했다. 이 때문에 16세기 라블레 등의 소설 작품이나 17세기 희극 작품들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과부의 생활이 즐겁고 유쾌한 것으로까지 묘사된다. 또 ‘프라시와즈’라고 불리던 17세기의 지적인 젊은 귀족 여성들 중에는 정략 결혼에 대한 반감으로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심지어 육체적 결합이 배제된 정신적인 사랑만이 아름답고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는 곧 정략 결혼과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배우자 관계에 억눌린 당시 여성들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8세기 귀족 사회에서 성행했던 성적 방종, 이른바 ‘리베르티나주’ 풍속 또한 가산과 혈통의 보존을 위한 정략 결혼이 빚어낸 불가피한 보상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앙시앵레짐 하의 여성 억압 구조는 여성을 ‘죄악의 장본인인 이브’의 딸로 파악하는 기독교 문화와, 가부장의 권위와 국왕의 권위를 동일시한 절대왕정에 의해 지지강화되었는데, 이러한 구조에 균열에 생기기 시작한 것은 교권과 절대왕정에 반기를 든 계몽주의 시대부터다.
2. 계몽주의 시대의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
계몽주의 시대는 모든 인간을 이성을 지닌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규정하면서, 인간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들의 불평등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시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킴으로써 이후 프랑스 사회의 여성 억압과 차별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시기이기도 하다.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만 한마디로, 남녀의 타고난 생물학적 차이로부터 남녀의 역할을 분리하고 이로부터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말한다.
참고 자료
프랑스 문화의 이해, 이창순, 학문사, 2002.
프랑스 지역학 연구, 김복래, 해남, 2003.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도서출판 강, 2004.
프랑스 혁명사 연구, 이세희, 부산대학교출판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