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최초 등록일
- 2008.05.06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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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고 시간 경과에 따른 구보씨의 심리적 변화를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분석한 레폿입니다. 제가 심리쪽 전공이라 나름 열심히 분석해보았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목차
1. 작가 박태원
2. 줄거리
3. 정신분석학으로 본 구보씨
1) 무기력한 자아의 구보씨
2) 신경증을 가진 구보씨
3)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구보씨
4) 건강한 자아를 되찾는 구보씨
본문내용
1. 작가 박태원
소설가 박태원(泊太苑)은 몽보(夢甫), 구보(仇甫), 구보(丘甫) 혹은 구보(九甫)라고도 불렸다. 1909년 서울의 수중박골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고, 그의 숙부는 양의사였으며, 고모는 신식 교육을 받은 여학교 교사였다. 특히 고모와 숙부는 춘원 이광수에게 사사 받을 기회를 만들어주어 박태원의 문학적 출발의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그의 집안은 중인 계층이었으며, 개화된 집안이었다. 일곱 살 때부터 큰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으며, 1919년 경성사법부속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정규 신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1923년에는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는데, 서구의 명작들을 열심히 읽으며 문학에 일찍이 뜻을 두었다. 1926년에는 시 「누님」이 『조선 문단』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소설로서의 등단은 『신생』에 단편「수염」을 발표하면서 이루어졌다. 문학에 탐닉하면서 박태원은 지적인 자만심과 우월감에 빠져,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회의에 빠졌다. 그래서 박태원은 고독하고 우울해졌고 신경쇠약이 되어 결국 휴학까지 하게 된다.
1928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후, 복학하여 제일고보를 졸업하였다. 이후 여러 필명으로 소설과 시 등을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곧 일본으로 간다. 1929년 일본에 건너가 동경 호세이 대학(法政大學) 예과에 입학하지만 문학에 빠져 있었던 그는 중퇴하고 만다. 특히 당시 일본에 풍미하던 신 심리주의 소설에 깊이 빠져 있었고 문화계에 풍미한 서구 모더니즘 문학운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박태원의 동경 유학 시절은 다양한 서구 현대 예술의 대한 관심과 수용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또 영화와 미술, 음악 등 예술 전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현대적인 예술 감각을 익혔다. 일본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초기 작품은 지식인의 현실 생활에서 오는 우울함을 표현한 것이었으나, 실상 그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쏟은 부분은 표현 기교였다. 간결체를 실험하거나 문장을 최대한 길게 늘이기도 했으며,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