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
- 최초 등록일
- 2008.04.30
- 최종 저작일
- 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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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크로드의 마지막 관문인 돈황에 대한 리포트
목차
1. 막고굴
1) 돈황의 위치
2) 막고굴의 기원과 형성
3) 막고굴의 불교미술
3. 막고굴에 나타나는 동서문화교류의 흔적
본문내용
`실크로드`는 중국과 로마를 이어주는 무역통로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무역통로를 통해서 여러 나라는 서로의 문명을 교류하였다. 그들이 교류하였던 문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되었던 첫 번째 문명은 물질문명이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실크로드를 통해 무역되었던 대표적인 물질문명으로는 비단(slik)이 있다. 그 외에도 자기가 실크로드를 통해 수출되었고, 향약(香藥)이 중국으로 수입되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되었던 두 번째 문명은 정신문명이다. 정신문명의 대표적인 예로는 종교를 들 수 있다. 종교의 전파와 수용은 인간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물질세계에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실크로드를 통하여 서역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되었는데, 이도 예외 없이 중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돈황(敦惶)이라는 이름은 `크게 성한다`는 의미로, 고비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로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 한무제가 장건(張騫)을 서역에 파견하여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개통하였다. 돈황의 역사는 기원전 11년 한무제가 이곳의 흉노를 무찌르고 하서회랑의 하나인 돈황군을 설치하여, 동부에서 한인(漢人)을 이주시켜 서역 지배의 거점으로 삼고 나서부터 이다. 그이래 실크로드는 물자뿐 아니라 문화와 종교 등 많은 것을 날랐다. 후한시대에는 불교가 중국 본토에 전래되고 이어 동진(東晋)시대에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막고굴과 천불동이 개착된다. 당(唐)의 7세기부터 8세기 중엽에 걸쳐서는 왕래가 가장 성해지고 황금시대를 맞이했는데, 동서무역의 중계지점으로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세계적인 `돈황 예술`을 창출했다. 당이 쇠퇴하자 한때 토번의 지배를 받고 곧 동쪽 위구르에게 멸망당한다.
이처럼 실크로드와 돈황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불교는 돈황에 막고굴과 천불동을 개착되게 하였다. 이들은 서역이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또한 동양의 모습도 담고 있는 예술이라 하겠다. 즉, 서양의 불교의 모습과 동양의 교류를 잘보여주는 것이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돈황의 불교를 통하여 동서양의 문화교류 모습을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막고굴>, 타가와 준조 저 박도화 역, 개마고원, 1999
<실크로드의 미술>, 권영필, 열화당, 1997
<동양의 문화와 문화재>, 이희재, 광주대학교, 1998
돈황The art of dunhuang, 돈황연구원, 범우사, 2001
돈황문학과 예술, 이수웅, 건국대학교출판부,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