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와집과 한개마을의 기와집
- 최초 등록일
- 2008.04.29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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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기와집과 한개마을의 기와집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1) 기와집의 정의와 유래
2)한개마을
2. 본론
1) 지역별 기와집의 구조와 특징
2) 한개마을의 기와집
3) 한국의 기와집과 중국 , 일본 기와집과의 비교
3.결론
한국의 기와집과 한개마을
본문내용
1. 서론
1) 기와집의 정의와 유래
기와집은 흙이나 시멘트 따위로 만든 지봉을 이는 건물이다. 우리 인류는 세상에 태어나 나무나 풀을 이용한 움집이나 바윗 속 동궁에서 생활을 했다. 점차 지혜가 발달하게 되어 목조 건물을 짓게 되었고 따라서 내구성이 높은 건축물도 조영하게 되었다. 이에 목조 건물에 사용될 지붕을 이을 부재로 기와를 생각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사용해왔던 식물성 부재인 나무껍질이나 갈대 혹은 짚은, 방수에 약할뿐더러 추위를 견디는데 한계가 있어 드디어 반영구적인 부재로써 기와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기와가 지붕을 빗물을 막아줄뿐더러 외벽을 유지, 보존할 수 있는 내구성과 방화성에 무엇보다도 훌륭하게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효용적 측면을 떠나 미학적 견지에서 이 기와집을 우리 민족의 멋과 의식을 대변하는 정취적 산물이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기와집’이라는 개념을 부와 권위의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었다. 이는 왕궁이나 성스런 가람에서 기와지붕을 얹게 되었고 따라서 품계가 놓은 벼슬아치들이 살던 집이 기와지분의 일색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에서는 기와를 춘추 전국시대에 사용하였다고 하나 우리 나라에서 언제부터 쓰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마니 사금 11년 조"에 큰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꺾이고 기왓장이 날렸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궁궐이나 큰 건물에 기와를 덮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 서기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 건물이라고 하는 법륭사를 지을 때, 백제에서 기와 박사 네 사람이 일본에 건너 가서 기와를 구어 주었다고 하므로 7세기 경에는 기와를 굽는 기술이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었던 듯하다.
상단의 사진은 남여유별했던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사랑채. 사랑채는 남성의 공간으로 주로 집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공부를 하는 공간이다. 이에 대해 안채(사진 제일 아래)는 여성의 공간이다.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중간에 있는 행랑채(사진 상단 두 번째)는 주로 종이나 머슴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