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8.04.18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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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의 역사에 대하여 정리한 레폿입니다.
목차
고려의 통일과 발전
정치적 혼란과 무신 정권의 등장
몽골과의 전쟁과 자주성 회복
본문내용
고려의 통일
후고구려의 궁예가 민심을 잃고 왕위에서 쫓겨나 그의 부하인 왕건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로 정하고 송악으로 도읍을 옮겼다. 고려 건국의 주역은 통일 신라 말기부터 성장한 지방 세력이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고자 후백제를 공격하였고, 신라에 적극적인 우호 정책을 펴 신라에게서 자발적으로 나라를 넘겨받았다. 고려는 936년 후백제군을 격파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한편 왕건은 발해가 멸망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받아들여 민족의 재통일을 이룩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후 통일 국가의 기반을 다지고, 사회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태조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평양)을 중시하여 이곳을 북진 정책의 기지로 삼아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나라 이름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라고 하였다.
고려의 발전
고려의 정치 제도는 태조 때부터 성종에 이르는 시기에 점차적으로 정비되고 보완되었다. 고려 광종은 왕권을 안정시키고자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호족들이 불법으로 차지하고 있던 노비들을 해방시켜 호족 세력의 경제적인 기반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또한 과거 제도를 처음 시행하여 학문과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였다. 과거 제도는 공신의 자제를 우선적으로 등용하던 종래의 관리 등용 제도를 억제하고 새로운 선발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과거 제도로 등용한 인재들을 국왕에 충성하는 관료로 삼아 정치와 행정 실무를 맡겨 왕권을 강화하였다. 광종은 이러한 정책에 불만을 품은 공신과 호족을 숙청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광종의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하여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 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여러 제도를 정비하였다.
고려의 중앙 정치 기구는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였으나 고려의 실정에 맞게 고쳐 독특한 정치 체제를 마련하였다. 고려 초 지방 행정은 중앙 정부가 인정한 지방 세력이 담당하였으나 점차 중앙 정부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중앙에서 임명한 관리가 지방 행정을 담당하였다. 지방 행정 제도는 지방 세력을 억제하고 중앙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비되었다.
고려는 전국을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누었다. 이민족과 국경을 이룬 지역을 각각 동계와 북계라 부르고 둘을 합하여 양계라고 하였다. 이 지역은 국경 지역이므로 군사 요충지에 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양계 이남 지역은 5도로 나누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