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과 종묘를 답사하고 그 구체적 내용을 조사한 글 입니다. 답사 후기도 포함.
- 최초 등록일
- 2008.04.14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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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과 종묘에 관한 세세한 내용과 사진을 첨부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또한 마지막에 답사 후기와 느낀점도 서술되어 있습니다.
목차 포함 27페이지
사진에 테두리 까지 한 완벽 정라~
목차
<경복궁>
․ 출석사진
․ 경복궁의 연혁과 역사
․ 경복궁의 의미
․ 경복궁의 구조
․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강녕전의 뜻
▷ 강녕전의 역할
․ 교태전
․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
․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 향원정
▷ 향원지의 구조
▷ 취로정
․ 경회루
<종묘>
․ 출석사진
․ 영녕정
․ 정전
․ 어숙실
<답사후기>
본문내용
강녕전의 뜻
정도전이 지었다. 홍범 구주의 오복 가운데 세번째가 강녕입니다. 무릇 백성의 왕이 된 분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음에 -황극 왕으로서의 기준과 법도-를 세우면 오복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연침의 이름을 오복 가운데 하나인 강녕으로 붙였습니다."
강녕은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의 오복 가운데 세번째로서 전체를 대표한다.
왕으로서 왕답게 마음과 덕을 닦을 때 저절로 향유하게 되는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강녕전 좌우의 연생전과 경성전으로 가면 왕이 천지 자연의 순리를 따라 인과의 덕을 지녀야 한다는 데로 확장된다.
강녕전의 역할
강녕전은 사랑방 구실도 하였다. 이곳에서 왕은 평상시 독서나 사색을 즐기기도 하고, 왕실 종친들이나 신하 등을 만나기도 하였다. 이 때는 주로 소침을 많이 이용하였다. 왕은 내전에서 사사로이 신하를 볼 때도 혼자서 만나지 않았다. 사관 없이는 혼자서 신하를 만나지 않는 것이 궁중 법도였다. 장인도 혼자 만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공개하여 투명한 행정을 펼친 것이다.
강녕전에서는 잔치도 하였다. 왕은 통치자이면서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였다. 가장으로서 왕은 때때로 왕실 종친들을 모셔다가 잔치를 베풀었다. 왕비나 세자가 생일을 맞으면 잔치를 벌이기도 하였다.
강녕전에는 넓은 대청 마루와 시원하게 펼쳐진 월대가 있다. 이곳에서 왕은 잔치를 벌였다. 조선 왕조 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예조에서 좋은 술 50병과 소. 양. 기러기. 오리 등 물건을 진상하자 무희와 악공을 강녕전으로 불러 용비어천가를 연주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후기 내용 일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편전으로 사용되었던 사정전. 정말로 동편에는 만춘전이, 서편에는 천추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봄에는 만춘전에서 가을에는 천추전에서 계절에 따라 거처를 달리 했다는 게 흥미로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