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화엄종과 법상종
- 최초 등록일
- 2008.04.09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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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 교종 즉, 화엄종과 법상종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고려 초 화엄종의 전개
3. 문벌귀족시기의 화엄종과 법상종의 대두
4. 무신집권기 교종의 쇠퇴
5. 원나라간섭기와 고려 말 화엄종과 법상종의 동향
6. 맺음말
※ 화엄종과 법상종의 사상
본문내용
1. 머리말
통일신라 말 선종이 새로 성립되면서 시작된 교종과 선종의 사상적 대립은 고려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 초기에서의 불교계의 일차적인 문제는 난립된 불교 교단의 정비와 함께 그 사상의 통일이었다. 이러한 때에 불교계의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한 사람은 고려 4대 왕인 광종이었다. 광종은 당시의 불교계를 교종과 선종으로 양립시켜 교종은 화엄종 중심으로 정리하고, 선종은 새로 중국에서 법안종을 도입하여 난립된 선종 각파를 정리하려고 하였다. 먼저 화엄종에서는 개경에 귀법사를 새로 세우고 균여를 주지로 앉혀서 그를 통하여 후삼국시대 이래 남악파와 북악파로 분열되었던 화엄종단을 통합하고 아울러 화엄종의 교리체계를 재정리하게 하였다. 그 뒤 현종대 이후에 가서는 교종 계통의 법상종이 새로 대두하여 화엄종과 함께 불교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종파는 각기 왕실과 귀족세력에 연결되어 대립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화엄종과 법상종의 등장부터 고려 말까지 어떠한 행보를 했는지에 대하여 사상적 측면보다는 역사와 정치·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하여 각 시기별로 알아보고자 한다.
2. 고려 초 화엄종의 전개
고려 초에 태조 왕건은 중앙집권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어지럽게 세워진 불교교단을 정비하려고 하였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서 종파를 따지지 않고 승려를 후원하였고, 그 중 태조와 연결된 승려 중에서는 선종의 승려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당시의 선종이 지방 세력과 연결되어 불교계를 주도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지, 선종에만 특별히 태조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이때의 화엄종은 태조의 후원 아래 그 기반을 유지하고 있었고, 화엄종을 제외한 나머지 교학불교의 세력은 선종에 비해서 미약하였다. 법상종의 경우 진표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던 석충(釋冲)이 자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진표의 가사(袈裟;승려의 옷)와 계간자(戒簡子)를 태조에 바치고 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 자료
없음